차가운 철현에 스민 남도의 온기, 철가야금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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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 두 대의 철가야금 악기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연주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혹시 모를 현의 끊어짐을 대비한 것이다. 이 낯설어 보이는 풍경이 이날 공연의 성격을 정직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철가야금으로 산조 전바탕을 타는 연주는 아직 무대 위의 한 시간을 온전히 장담할 수 없는 악기라는 것.
지난 6월 3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서은영 가야금 독주회 <철가락 — 이태백류 철가야금산조 전바탕>는 바로 그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남도의 선율 가락을 철가야금 산조로 만나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짧은 발췌나 시연이 아니라 다스름부터 세마치까지, 약 60분에 이르는 긴 호흡을 아직 널리 보급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악기 위에 얹는 일. 공연명 그대로 이것은 '공력(功力)'의 무대였다.
철가야금, 근대 무대가 낳은 악기
철가야금은 일반 관객은 물론 국악 애호가에게도 낯선 것이다. 가야금은 천오백 년 가까이 명주실의 탄력과 오동나무 울림통의 부드러운 공명 위에서 자라온 악기이며, 농현과 시김새라는 남도 음악어법 전체가 이 명주실의 물성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철가야금은 그 몸체 위에 금속현을 얹음으로써 전혀 다른 울림의 지평을 열었다. 그 탄생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가야금이 무용 반주 음악에서 큰 몫을 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장 무대의 크기, 춤의 움직임, 더 큰 음량과 긴 여음에 대한 요구 속에서 명주실 대신 금속현을 얹은 철가야금이 만들어졌다. 철가야금 초기 발전과 무대 활용법 정착에는 근대 음악극과 신무용의 반주 음악을 이끈 박성옥의 공이 컸다. 해방 이후 신무용 세대는 철가야금으로 연주한 산조춤 음악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러니 철가야금은 단순히 "가야금의 줄을 바꾼 악기"가 아니다. 근대 한국 공연예술의 감각 변화가 낳은 악기이며, 음악이 춤과 극장을 만나며 스스로 몸을 바꾼 흔적이다. 이후 철가야금 음악은 무용음악과 산조춤의 영역에서 쓰임을 얻었고, 박성옥의 철가야금산조를 거쳐 김영재의 철가야금산조춤 음악 등으로 이어지며 점차 독립적인 산조 어법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리고 이를 다시 본류의 물음 앞으로 끌고 온 이가 이태백이다.
그는 오랜 시간 철가야금을 연구하며 이 악기에 다름 아닌 산조 전바탕을 입혔다. 산조란 한 악기가 낼 수 있는 표현의 극한을 남도 가락의 어법으로 조직한 음악이다. 철가야금으로 산조 한바탕을 짠다는 것은, 이 악기가 음색의 신기함을 넘어 우리 음악의 가장 깊은 문법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묻는 일이다. 이태백류 철가야금산조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며, 서은영의 이번 무대는 그 대답을 다른 연주자의 몸으로 다시 검증하는 자리였다.
낯선 몸, 다른 문법
명주실이 아니라 금속현을 상대한다는 것은, 연주자가 이미 알고 있던 가야금의 물성을 다시 낯설게 만나는 일이다. 같은 산조의 어법을 연주하더라도 줄의 장력, 손끝에 돌아오는 저항, 농현의 폭, 음이 꺾이는 각도가 모두 달라진다. 12현 산조가야금과 25현 가야금이 줄의 긴장과 음역, 연주 근육의 쓰임에서 서로 다른 감각을 요구하듯, 철가야금은 가야금이라는 이름 아래에 있으면서도 별도의 신체 문법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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