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소 키우던 땅에 비행기가, 여의도의 과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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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된 여의도 공원. 20세기 후반의 이곳은 그러나, 롤러스케이트와 자전거 타던 '5.16 광장'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보다 더 험난한 세월을 겪었던 앞선 시대엔 일제가 삼엄하게 경비 하던 섬 안의 '비행장'이었다. 지난 23일, 서울 하늘 길을 따라 이곳을 다녀왔다.
1945년 11월 23일, 미 수송기 C-47기가 여의도 비행장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중국 충칭에서 임시정부 요인 1진을 태우고서다. 비행장 주변은 한적한 시골이다. 온통 새하얀 백사장의 한강은 물길마저 가느다랗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시선이 온통 한 곳으로 쏠린다. 그 문을 통해 내려온 일행 가운데 백범 김구가 있었다.
수십 년의 망명 생활 끝에 가까스로 해방된 조국 땅을 밟는다. 한강 한가운데 작은 비행장이 역사적 장면의 무대가 된 순간이다. 미 군정이 임시정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늦어진, 순전히 '개인 자격'에 한정된 초라한 귀국이었다. 80년이 더 지났어도 알 수 없는 역사의 이면이다.
그보다 앞선 1945년 8월 18일 오전 11시, 이범석·노능서·장준하·김준엽 4인의 광복군 정진대와 함용준·정운수·서상복이 포함된 미 특공대(OSS)가 여의도 비행장에 내려 국내 진공 작전을 벌인다. 늦었으나 우리 손으로 해방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절박함에서다.
비행장을 지키던 일본군과 일촉즉발이다. 미 군정 중재로 교전은 없었으나, 28시간 뒤 타고 온 C-47기로 부득이 중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여의도 비행장은 이처럼 나라 변천의 굽이마다 역사가 지나간 자리였다.
드넓고 하얗던 여의도 백사장은 어디로 갔을까? 목장을 이룬 작은 산마저 사라졌다. 대신 호수처럼 고여 천천히 흐르는 한강이, 큰 줄기로 휘돌아 나가는 섬으로 남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군중
여의도에 활주로가 생겨난 건 1916년이다. 왕조 시대엔 마소를 기르던 섬이다. 일제가 섬을 연병장과 군 비행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곳은 어느 때엔 경성 조선인이 하늘을 바라보는 낯선 창이기도 했다. 마치 유에프오(UFO)를 만난 듯 마냥 신기하고 경이로운 시선으로 말이다.
안창남 이전, 경성의 조선인에게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검은 쇳덩이에 불과했다. 소수의 사람만 신문 지면을 통해 비행기 존재를 알았고, 실제 모습을 본 사람도 거의 없었다. 간혹 굉음을 울리며 경성 하늘을 가르며 지나간 비행기는 일제 군용기 일색이다.
이렇듯 비행기는 신기한 물체인 동시에 침략적 제국의 위압을 보여주는 공포로 각인된 존재였다. 1937년 중일전쟁 개전 후, 나라를 팔아 부를 축적한 친일파들이 앞다퉈 비행기를 헌납하기 바빴지만 말이다.
그런 비행기를 조선인이 조종한다. 1922년 12월, 수만 명의 조선인이 한강 둔치에 모여든다. 조선인 비행 조종사인 안창남의 비행기 '금강호'가 여의도 활주로를 이륙한다. 경성 상공을 선회하자 환호성을 울리며, 모자를 흔들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경이로운 표정의 아이들이 점으로 멀어져 가는 비행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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