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시대 경호처가 향한 수렁,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권력은 스스로 자체를 보호하는 장치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문제는 그 장치가 필요의 범위를 넘어 하나의 당위로 굳어질 때 발생한다. 방어를 위한 수단은 점차 사고의 전제가 되고, 그 전제는 조직 내부에서 의심되지 않는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이 과정에서 특정한 판단은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고, 다른 선택지들은 점차 비현실적이거나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방어 논리는 조직의 공기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규범이 되고, 규범은 스스로 강화하며 확장된다. 그러면서 조직은 외형의 변화 이전에 이미 내부에서 다른 성격의 존재로 이동하게 된다. 권력을 둘러싼 이러한 변화는 종종 점진적이어서 쉽게 감지되지 않지만, 일정한 시점에 이르면 되돌리기 어려운 구조로 굳어진다.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 당선된 뒤 3월 3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 계획이 공식 발표되었다. 당시에는 '제왕적 권력 구조의 개선'이라는 명분이 제시되었고, 청와대의 폐쇄성을 벗어나 국민과의 소통을 확대하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동시에 국방부 시설을 활용해 경호와 안보 대응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도 강조되었다. 이러한 설명은 정책적 필요와 상징적 의미를 결합한 서사로 구성되어 대중에게 전달되었다는 점에서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과정을 통해 권력의 자기방어를 둘러싼 논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정당화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개방성과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제시되는 순간에도, 그것이 실제로 어떤 형태의 권력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공간의 변화가 곧 권력의 성격 변화를 의미하는지, 또는 다른 방식의 집중과 재배치를 낳는지는 단순한 선언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변화가 제도적 견제 장치와 어떤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하지만 청와대 집무실의 용산 이전이 '열려라 참깨'식의 주문으로 통하면서 어떠한 담론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이는 권력의 방어 논리가 어떻게 새로운 언어와 형식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강조되고 무엇이 가려지는지를 드러내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의 이전이 결정되었을 때, 이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이동을 넘어 권력의 동선과 시야, 나아가 권력을 둘러싼 경호의 방식과 기준 전반에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기존의 공간이 전제하고 있던 경호체계와 접근 통제 방식 등이 근본적으로 재조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제도적·운영상의 변화로 이어질 게 자명했다. 특히 대통령의 이동 경로와 외부 노출 수준, 주변 환경과의 거리 설정 등 구체적 경호 요소들이 새롭게 설계되어야 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조정에 그치지 않고, 권력을 어떻게 보호하고 동시에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기준 자체를 다시 묻는 과정이기도 했다.
모든 과정의 중심에 김용현이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김용현이 있었다. 그는 윤석열의 충암고 선배로, 육사 38기로 임관한 이후 수도방위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 등 주요 군 직위를 거치며 군사 작전 분야에서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대선 기간에는 선거대책본부에서 안보 정책을 총괄했고, 이후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에서 부팀장으로 경호·경비 분야를 담당하며 이전을 지휘했다. 김용현의 경호처장 인선 가능성이 거론되던 시기에는 일부 경호처 퇴직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참여해 용산 이전에 따른 경호·경비 체계의 초기 구상을 지원한 정황도 파악된다. 이러한 흐름은 인적 구성과 의사결정 구조가 어떻게 결합되어 새로운 경호체계를 형성해 가는지를 보여주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경호처장으로 김용현이 공식 내정된 것은 5월에 들어서지만, 청와대 이전 준비가 진행되던 시기부터 그는 경호처 부속청사에 임시 사무실을 두고 관련 현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실무적으로 밀접하게 관여한 인물이 김성훈이었다. 김성훈의 소속 부서가 김용현의 임시 사무실이 있던 '부속청사'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은 두 사람 간 업무적 접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근접성은 공식 직위 이전 단계에서의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둘러싼 해석을 낳기도 한다. 동시에 인수기라는 과도기적 상황이 비공식적 협의와 역할 확장을 용인하는 환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전인 2022년 4월 초 부속청사에서 미국 고스트로보틱스 한국지사 '드론돔'의 로봇개 시연회가 열렸다. 이 역시 김용현과 김성훈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첨단경호에 관한 사항은 과학경호 부서에서 담당하는데, 드론돔의 로봇개 시연회를 통신 부서에서 관할 한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당시 과학경호를 담당했던 한 경호관은 "통신부서의 연락을 받고 갑작스럽게 시연회 장소에 갔던 기억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로봇개 사업과 관련해 드론돔 측 인사가 고가의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를 김건희에게 공여한 의혹이 제기되어 특검에서 시계 제공이 로봇개 사업 관련 청탁과 연결된 것인지 등을 조사하기도 했다. 정권 교체기에 경호조직의 공식 의사결정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비공식 네트워크가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는 셈이다.
대통령실 이전지로 용산이 결정되자, 한 저명한 건축학 교수는 건축적 환경을 높이 평가하며 이를 '신의 한 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폐쇄성과 단절을 넘어 '국민 속으로'라는 구호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에는, 용산이 지닌 경호 환경은 상당한 부담 요인을 안고 있었다. 개방성을 확대하려는 시도와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요구가 구조적으로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공간 선택 이상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긴장은 이후 경호 방식과 공간 운영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이는 과학과 경호의 만남을 추진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하다.
자연 요새로 불릴 정도의 지리적·물리적 이점을 갖추었던 청와대와 달리, 용산은 훨씬 더 촘촘하고 입체적인 경호체계를 요구하는 환경이었다. 초고층 아파트 등 민간 건물과 상업시설, 외국 공관과 군 시설 등이 혼재된 공간에서 대통령의 동선은 상대적으로 더 넓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잠재적 위협 역시 불특정 다수 속으로 분산되는 양상을 띠었다. 이로 인해 경호는 단순한 물리적 차단을 넘어, 가시성과 접근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확장되었다. 결국 이러한 환경은 경호를 기술적 대응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게 하고, 권력의 이미지와 상징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복합적 과제로 전환시켰다. 이는 곧 경호가 물리적 안전뿐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와도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용산이라는 확장된 공간에서 김용현의 경호처는 새로운 경호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소통과 개방의 기조에 맞추어 AI 기반 과학경호를 도입해 새로운 유형의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기술의 도입은 경호의 정밀성과 대응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설계되었는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특히 첨단기술이 동원되는 방식이 안전 확보라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이는지는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 과정은 경호의 언어가 어떻게 재구성되고, 그 의미가 어떤 방향으로 이동하는지를 드러내는지를 추정케 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과학경호는 '안전'의 확보가 아니라 '충성'의 발로였음을 추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경호처는 늘 한 발 뒤에 있었다
경호조직의 기본 덕목인 충성이 법과 제도, 헌정질서에 대한 충성에서 벗어나 특정 인물과 그 인물이 체화한 정치적 세계관으로 이동할 경우, 조직은 점차 이념화의 경로에 들어설 가능성이 커진다. 용산 이전 이후 경호처 내부에서 '정권 수호'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점은 이념화 관련한 하나의 단서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대통령 개인의 신변 보호를 넘어 '자유 수호'와 같은 추상적 목표가 강조되면서, 경호의 대상과 범위가 확장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경호의 목적이 어디까지 설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를 흐릴 수 있다. 조직이 정권과 동일시되고, 정권이 다시 대통령 개인과 중첩되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경호는 중립적 기능을 넘어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된다. 이는 경호조직이 수행해야 할 공적 역할과 정치적 요구 사이의 긴장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조직은 곧 정권과 동일시되었고, 정권은 다시 대통령 개인과 겹치는 양상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경호처는 이전과는 다른 위상과 작동 방식을 보이는 조직으로 인식되었다. 대체로 비서실에서 요구하는 것은 묻거나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때로는 청와대 주인은 경호처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지만, 실상은 '비서실에서 기침을 하면 경호처는 독감에 걸린다'는 것을 빈말로 여길 수만은 없을 정도였다. 물론 경호 업무가 대통령 일정과 행사 계획에 밀접하게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구조적 제약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경호 활동이 비서실의 행사 계획에 따라 이뤄지다 보니, 경호처는 늘 한 발 뒤에 있었다. 판단은 하되 드러내지 않았고, 권한은 행사하되 앞서지 않았다. 비서실의 의도와 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운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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