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조직에 영혼 갈아 넣은, 어느 경호관의 마지막 질문

이 글은 경호처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1990년대 중반 대통령 경호처에 입사해 경호관으로 근무한 '가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 기자 말
그러니까 30여 년 전 대통령 경호관으로 임용되었을 때만 해도, 30년을 근무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인사 명령이 나면 보따리를 챙겨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별정직 공무원 신분이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행사 준비를 총괄한 선발부장이 취임식을 마치고 짐을 싸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아직 40대 중반의 부장이었다. 그것이 곧 자신의 미래일 것이라 어렴풋이 여겼는데, 어느새 30년이 흘렀다. 김대중 정부에서 특정직으로 전환되며 신분이 안정되고, 이명박 정부에서 정년이 55세에서 58세로 늘어난 덕분(?)이었다. 때로는 조기퇴직으로 세컨드라이프를 설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다음 달부터 공무원 연금을 수령하게 된다는 사실을 작은 위안으로 삼았다.
그해 겨울 김경호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신무문을 지나 경복궁 안에 있던 30경비단 연병장으로 향했다. 경회루 북쪽, 차가운 흙과 바람 위에 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곳은 조선시대 임금의 어진을 모신 태원전과, 왕과 왕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시신을 잠시 모셔 두던 빈전이 있던 자리였다. 일제가 1915년 태원전과 빈전을 허물고, 조선총독부와 총독 관저를 경호하는 일본군 부대를 들여놓으면서 그 일대는 오랫동안 군사 지역으로 묶였다. 그런 역사적 층위를 또렷이 되짚어볼 여유는 없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숨을 고르며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국가의 심장을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 그날의 다짐은 어쩌면 너무나 단순했지만, 그가 통과해야 했던 시간과 현장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한 인간이 국가의 심장을 지키는 대통령 경호관이라는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신임직원 교육은 혹독했다. 대부분 20대 후반이었는데, 검은색 훈련복이 일상복이 되면서 개인적인 용무를 챙길 여력은 거의 사라졌다. 말 그대로 걸음마부터 다시 배우는 교육이었다. 말보다 눈빛이 중요해지는 세계에서, 훈련은 날마다 김경호의 한계를 조금씩 부숴 나갔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경복궁 일대를 '구보'했고, 구령 소리와 땀 냄새가 뒤섞인 그곳에서 그는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몸으로 배웠다. 경호관은 무엇 하나를 깊게 꿰뚫기보다, 모든 것을 얄팍하게나마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서서히 깨달았다. 그렇게 몸과 감각을 다시 짜 맞추는 시간이, 국가의 심장을 지키는 사람으로 재탄생하는 통과의례였다.
국가의 심장을 지키는 일
김경호에게는 의아스러운 점도 있었다. 첫날 모였던 동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튿날이 되자 새로운 동기가 조용히 합류해 같은 훈련복을 입고 구보 대열에 섰다. 신임직원 공개채용에 응시해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몸을 만들기 위해 애쓴 게 의미 있는가 싶기도 했다. 훈육관은 그저 "동기로 함께 교육·훈련을 받을 것"이라는 말로 상황을 간단히 정리했다. 대통령을 멀리 있는 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군 특수부대 교육의 마지막으로 공수훈련에서 강하를 마친 뒤에야 비로소 행사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행사장 참관을 하며 선배 경호관들의 날렵한 동작과 매서운 눈빛을 곁눈질로 따라 본 뒤, 이동하는 대통령 차량을 스쳐 본 것이 전부였다. 그 거리감 속에서 국가의 심장을 지키는 일은 화려한 장면보다 보이지 않는 준비와 반복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겨울에 시작된 신임 직원 교육훈련은 더위가 시작할 무렵에야 겨우 끝을 볼 수 있었다. 동기들은 전원 선발부서로 배치됐다. 미리 행사장에 나가 안전조치를 맡아, 현장을 일체의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진공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 부서였다. 부서 배치를 받은 첫날, 한 선배 경호관이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쥐여 주며 자판기 커피 열 잔을 뽑아오라고 했다. 청와대 경내 자판기는 10원짜리 동전 하나면 되는 줄 알았던 터라, 김경호는 자판기 앞에서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되묻게 됐다. 현장부서의 분위기는 냉정했다. 얼마 전 선배 경호관들이 머리를 맞대 이론 교육서인 '경호교범'을 펴냈지만, 경호 실무는 교범이 아니라 현장에서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서만 온전히 전수되고 있었다. 종이에 적힌 문장보다, 차가운 바닥과 날선 지적이 몸에 먼저 새겨지는 세계였다.
선발부서는 행사장에서 실제 직무를 수행하며 노하우를 몸으로 익혀야 했다. 경호계획서를 축소 복사해 달달 외우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렇게 잠을 쪼개가며 계획서를 몽땅 머릿속에 집어넣어도, 허를 찌르는 선배 경호관의 질문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순간이 잦았다. "행사장 주변 직가시 건물은 몇 개인가?" 그 질문은 경호계획서 어디에도 명시돼 있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나 깨질 준비를 해야만 했다. 이어몰드를 착용하고 있어도 약어로 오가는 무전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일은 셀 수 없었고, 행사장 동선 파악이 미흡해 선배의 호통을 듣는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 번은 행사 종료 직후 차량 위치 보고가 30초 늦었다는 이유로 동기 전원이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그 혹독한 훈련 속에서 김경호는, 국가의 심장을 지키는 일은 화려한 의전이 아니라, 시간 한 조각과 시야 한 칸까지 통제하는 냉정한 실무의 연쇄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갔다.
그가 처음으로 '경호관이 되었다', 느낀 순간
그날 밤, 김경호는 늦은 시간까지 텅 빈 주차장을 서성이며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왜 나는 이토록 서툰가." 자책은 길었지만, 포기는 선택지에 없었다. 직속 선배에 의한 도제식 교육은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배는 등을 토닥이기보다, 침묵으로 가르치거나 장광설로 압박을 더했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보고는 짧게, 판단은 길게." 선배가 남긴 한마디는 칭찬이라기보다 버거운 숙제에 가까웠다.
김경호는 수첩에 빼곡히 메모를 쌓아 올리며 자신을 단련해 나갔다. 어느 날 선배가 무심히 내뱉은 한마디가 그 시간을 통째로 덮었다. "이제는 내 등을 맡길 수 있겠다." 그 말은 김경호가 처음으로 '경호관이 되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방향의 위험까지도 대신 책임져 줄 수 있는 존재로 인정받았다는, 절대적 신뢰의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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