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엔 웃지 말라"던 선배 교사의 충고, 통제하는 교사에서 곁에 선 어른 되기
"3월 한 달은 애들한테 웃어주면 안돼, 이것만 잘 기억하면 담임하는 1년 편하다."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기간제 교사로 첫 발을 뗀 26살, 새학기를 시작하기 직전 들었던 이야기다.
영화를 전공하고 졸업 후 촬영장 대신 나는 대안학교에서 일을 시작했다. 교육에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교직이수를 위해 나갔던 교생실습이 한몫을 했다. 졸업직전에 교생으로 만난 영상 특성화고 아이들은 그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었다. 나의 졸업 작품이 칸 영화제에 진출할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영화과에 입학했던 그 옛날의 반짝임을 아이들에게서 찾았다. 졸업을 하고, 칸영화제에 가는 대신, 학교를 선택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전까지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면 핑계이고 교생실습 때 마주한 아이들의 눈빛이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반짝거렸다. 유한한 나의 모든 것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한 학기 동안 전교생이 4명밖에 안 되는 작은 대안학교에서 영상수업을 진행했다. 가톨릭 교구에서 운영했던, 지금은 없어진 영상대안학교였다. 독실한 무교인 나는 학교에 온전히 젖어들지는 못했지만 아이들과 서로의 놀림감이 되어가며 신나는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다 선배의 추천으로 영상 특성화고 기간제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한 학년에 10개 반이 있는 큰 학교였다. 1학년 담임이 되었고, 새학기 직전 인수인계를 받으며 27명의 아이들 명단과 사진을 받았다. 명단을 받았을 뿐인데 손이 무거웠다.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는 나에게 선배 교사들은 대안학교 때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3월 한 달은 아이들에게 웃어주면 안 된다는 조언을 남겼다. 아이들에게 기세를 보여주어야 통제하기 쉽다는 이야기였다.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을 '통제'하는 게 교사의 역할에 포함되는 것인가?
관리자로 성장하는 교사
선배들의 조언을 뒤로 하고 미소를 가득 지으며 아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곧 웃지 않는 교사로 성장했다. 아이들이 교복을 '예쁘게' 입지 않는 건 담임의 관리 소홀.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이 많은 것도 담임의 지도 역량 부족. 교실 책상 줄이 똑바르지 않은 것도 관리 소홀이라는 명목으로 부장 선생님에게 여러 번 불려간 결과였다. 1년마다 기간제 계약을 갱신해야 했던 상황에 이상하다고 느낀 것들을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교사로 성장했다.
시험기간 오후에 교무실에 있으면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천국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에 기이함을 느끼다가 무감각해졌다. 아이들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묻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규칙을 우선으로 제시하고 통제를 하는 교사로 성장했다. 강당으로 아이들이 행사 때문에 모인 날, '강당 무대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앞사람 뒤통수가 보여야 잘 서있는 거다. 다들 똑바로 서라'는 교감선생님의 이야기에 울화가 치밀어도 한마디도 못하는 나 자신에게 무기력함을 느꼈다.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짧은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 발언에 항의한 여학생이 젠더 갈등을 조장시키는 유별난 아이라고 전교생 앞에서 평가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황과 나 자신 모두 끔찍했다. 그리고 곧 그런 일쯤이야 담아두지 않고 흘려듣는 교사로 성장했다.
부서지고 회복하고 질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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