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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이후로 처음...아빠가 팔순 여행에서 딸에게 주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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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이후로 처음...아빠가 팔순 여행에서 딸에게 주문한 것

연둣빛 댓잎들이 햇빛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반짝거리던 지난 5월 말 담양 죽녹원 숲길. 40일이면 15미터나 자랄 수 있는 성장세를 자랑하는 대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려 솨- 소리를 낸다. 그 사이로 구부정한 아빠의 등이 보인다.

평생 조경일을 하며 산으로 들로 부지런히 발을 디뎠을 아빠의 하체도 팔순이 되니 눈에 띄게 가늘어지고 힘이 빠졌다. 바지가 남아 펄럭거리는 두 허벅지를 힘들게 끌며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모습이 낯설다. 이상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와, 여기 예쁘다! 아빠! 엄마랑 둘이 여기 서 봐. 사진 찍어 줄게!"

아빠와 엄마는 어색하게 길 가운데에 선다. 아빠는 나를 낳아 준 엄마를 48세에 먼저 보내고 오랫동안 혼자 계시다가 지금의 새엄마를 62세에 만나셨다. 그 후로 두 분이 같이 한 세월이 20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는 어색해 하신다.

"좀, 웃어봐! 표정이 너무 어두워!"

아빠의 얼굴이 더 어색해진다. 웃는 것도 아닌 것이, 화난 것도 아닌 것이. 엄마라도 활짝 웃어 다행이다.

아빠의 팔순 기념 여행

내가 지금 우리 아들 나이였던 중학교 2학년 때 기억 속 아빠는 호탕하게 잘 웃던 쾌남이었다. "아빠, 어떻게 하지, 나 영화관에 책가방을 놔두고 왔어"라고 겨우 털어놓는 딸에게 공부는 안하고 영화를 보러 다녔냐고 혼내지 않았다. 오히려 "우와 우리 딸 대단하네, 학생이 가방을 영화관에 놔둬버리다니"라며 껄껄 웃고는, 내 손을 꼭 잡고 영화관까지 버스를 타고 같이 가서 가방을 찾아주셨다. 그런 아빠가 이제는 다리가 불편해 조금만 걸어도 자꾸 어디에 걸터앉으려 하고, 소화 기능이 떨어져 비싼 음식을 사드려도 몇 숟갈 못 드시는 짠한 노인이 되었다.

아빠의 팔순을 축하해야 한다며 나는 나와 남편이 부모님과 남동생 가족의 여행 비용을 모두 감당하는 조건으로 해외 가족 여행을 제안했다. 아빠의 조경 지식과 두 노인의 체력을 감안하여 일본 교토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엄마가 싫다고 한다. 20년을 같이 사셔도 두 분이 이렇게 안 맞다. 아직도 익산의 한 식물원에서 일하는 아빠와 맞벌이인 우리 부부, 남동생 부부네와 다 같이 겨우 맞춘 일정이 최근 2박 3일 담양 여행이었다.

세 식구가 대형 펜션을 빌려 다 같이 머무는 것도 좋았겠지만, 아빠의 수면 패턴 문제와 남동생네 아이들이 초등학생인 걸 감안해 방은 따로 쓰되 이웃해 있는 빌라형 펜션을 숙소로 잡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담양의 유명한 떡갈비집에서 남동생 식구들을 만났다. 한우 떡갈비와 돼지갈비, 대나무통에 담긴 따뜻한 밥이 아빠 앞에 정성스레 놓였다. 아빠는 이 접시 저 접시로 한 번씩 젓가락을 가져갔지만, 통 입맛이 없는지 어린이가 먹는 양만큼 겨우 드신다.

"입맛에 안 맞아?"

"아니, 배가 별로 안 고파서 그래."

이게 다 얼마짜린데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솟아올라 오는 걸 꾸역꾸역 누르고 남편과 아들, 남동생과 조카들이 잘 먹는 것으로 감사하자 생각했다.

다음 날은 국수거리를 찾았다. 연휴라 붐비는 사람 가득한 길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아빠는 시장하셨는지 먼저 나온 뜨거운 삶은 달걀을 두껍고 거친 손으로 야무지게 까더니, 호호 불며 맛있게 드셨다. 연이어 비빔국수도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셨다.

그제야 내 속이 다 시원했다. 그래, 어제는 그저 컨디션이 안 좋으셨던 거구나. 안도하며 소쇄원과 담양호 산책로를 아빠의 느린 걸음에 맞추어 가만가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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