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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생활 속으로, 민주동문회의 변신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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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생활 속으로, 민주동문회의 변신

AI 통합 요약

선거 투표 부정 논란으로 촉발된 시위가 개표소를 차단하면서 그곳에 입주한 체육 기관들이 일주일 이상 정상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누적된 경제 손실이 심각해지자 체육 최고위 지도자와 대통령이 상황 해결과 책임 추궁을 함께 공식화했다.

윤석열의 12·3 내란을 진압할 때 무엇보다 주목받은 건 단연 깃발부대였다.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이나 '응원봉을 든 오타쿠시민연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연맹' 등 많은 깃발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들 깃발이 '민주노총'이나 '전국농민회총연맹' 같은 전통의 조직과 조화를 이뤄 광장을 발랄하고 생기차게 만들었다. 이 대오에서 민주동문회라는 깃발도 나름 한 몫을 했다.

'민주동문회'는 70년대 박정희 독재시절 그리고 80~90년대 광주항쟁과 6월항쟁 등을 거친 세대가 만든 대학별 단체다. 세월이 흘러 중년의 나이에도 박근혜 퇴진 투쟁에 앞장섰고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진압하는 싸움에도 적극 나섰다. 청춘을 흘려보냈건만 여전히 민주화 투쟁의 현역으로 뛰고 있다.

그런데 대학 수준에서만 조직되었던 민주동문회가 '빛의 혁명' 과정에서 경동고와 대전고 등 고등학교 민주동문회 결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반가운 변화다. 이런 흐름이라면 향후 각급 학교의 민주동문회가 얼마나 발전할지 사뭇 기대하게 한다. 한국외국어대학과 경동고 등 몇몇 사례를 통해 민주동문회의 앞날을 전망해 보자.

멈추지 않는 민주주의의 기관차

전국대학민주동문회 중 한국외국어대학의 민주동문회(이하 외민동)는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26년 5월 진행된 광주 순례에서도 재학생 포함 140여 명이 참석해 16·17 양일 동안 금남로를 달궜다. 외민동이 지금처럼 활발한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2019년 정외과 80학번 김종찬이 회장을 맡으면서다. 때마침 코로나 시기라 그는 대외 활동 대신 움직임이 탄탄한 경희대민주동문회 등 다른 대학의 사례를 조사해 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김 회장은 2022년 5월, 82·83·85학번 후배 4~5명을 모아 본격적으로 외민동의 재건과 부흥을 꾀했다. 우선 회비 내는 회원을 모으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총학생회장을 한 85학번 함칠성이 90년대 학번과 가교 노릇을 하면서 회원 수가 크게 늘어, 2026년 5월 현재 회원이 800명을 넘었을 정도다.

조직의 세가 급격히 커진 데는 윤석열의 공도 크다. 외민동은 내란을 진압하는 광장으로 부지런히 동문을 불러냈다. 적게는 20명 많을 때는 100명 정도가 외민동의 깃발 아래 모여 매일 거리를 달렸다. 지금은 늘어난 회원 수에 맞게 전국을 6개 권역으로, 서울은 4개 권역으로 나누고 기획위원회·조직위원회·소통공감위원회 등 5개 위원회를 두어 산악회나 문화탐방 같은 여러 소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상근자를 두지 않고 위원회 체제로 운영하니 일상경비가 절약되어 지부·지회모임이나 동아리 지원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연말에는 '따뜻한 동행'이라는 특별회비를 걷어 동문자녀의 장학금이나 투병 중인 동문을 돕고 있는데 2025년에는 무려 4000만 원이나 걷혔다고 한다.

김종찬 회장은 회원을 1,000명까지 끌어올리고 재학생 참여도 모색해 외민동을 멈추지 않는 민주주의의 기관차이며 동문들의 느티나무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학칙 개정이 끌어낸 부경대 민동과 재학생의 '끈끈한 연대'

외대 못지않게 민주동문회가 활발한 대학으로 부경대학교가 있다. 부경대민주동문회는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국립부경대가 1996년 7월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가 통합하여 출범했기에 민주동문회도 이에 발맞춰 2002년 통합을 결의했다. 모르던 사람들이 한울타리에 모였으니 한 몸이 되는 게 숙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경대민주동문회는 소모임 활동에 공을 들였다. 영화, 노래 등 다양한 모임이 있지만 대표적인 동아리는 산악회다. 처음 '입산금지'에서 지금은 '비정상산악회'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고 있다. 무릎이 안 좋은 나이니 봉우리에 집착하지 말고 둘레길을 걸으며 우정을 나누자는 뜻이다.

부경대민주동문회나 부경대 역사에서 박근혜 탄핵 투쟁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16년 11월 3일 부경대 교수 140명과 민주동문회가 함께 본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과 헌정질서 파괴의 책임을 지고 하야하라"라고 시국선언을 했다. 그날 비로소 군사독재 시절 내내 숨죽이며 지내던 수산대, 공업대의 분위기를 떨쳐버렸고 민동과 재학생의 연대도 끈끈해질 수 있었다.

변청숙 부경대민주동문회 사무국장에 따르면 민동과 재학생의 연대는 2024년 9월 싸움을 계기로 더 단단해졌다고 한다.

"2024년 11월, 윤석열 정부의 악행에 분노해 당시 부산 지역 12개 대학에서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부경대에서만 학내 정치활동은 안된다는 학칙을 들먹이며 학교 당국이 탄압에 나섰어요. 재학생들이 이에 항의해 1인 시위도 하고 총장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농성에 참여한 1학년생이 짜장면이 생각난다고 말했어요. 이 소식을 민동 단톡방에 올렸더니 전국의 많은 동문이 성금을 보내와 농성 기간 내내 후배들의 밥과 간식을 해결해 줬어요. 농성을 푸는 11월 9일, 민주동문회에서 후배들을 맞이하러 갔는데 학교 측에서 경찰을 불러들여 학생들이 연행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민주동문회는 즉각 교문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고 이 소식을 들은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에서 규탄 성명을 냈습니다. 전국민주동문회에서도 연대 성명과 지지 현수막을 걸어줬고요. 이 싸움 끝에 비민주적인 학칙을 개정하고 재학생과 민주동문회의 관계가 탄탄해졌습니다. 덕분에 2024년 12월, 윤석열 탄핵 투쟁에서 부경대 재학생과 동문들의 함성이 부산서면 일대에 울려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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