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잠 못 잔다는 친구에게 건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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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노견이 된 꼬마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던 때였다. 얼마 걷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는 녀석을 나는 길가 벤치에 앉아 조심스레 무릎 위로 안아 올렸다. 낡은 시계 태엽처럼, 위태로운 심장이 내 손바닥 안에서 가쁘게 뛰었다. 녀석은 제 명의 무게를 모른다는 듯 순한 눈을 내 품에 가만히 기댔다. 그때 지나가던 한 중년 남자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사람 앉는 의자에 왜 개를 안고 앉아요"
말은 질문이라기보다 불편함의 표시에 가까웠다. 남자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꼬마를 조금 더 꼭 안았다. 말은 허공으로 사라졌지만 자리는 남았다. 길을 걷다 무심히 튕긴 흙탕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말의 내용보다 말투가 더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상처는 언제나 의미보다 감각으로 먼저 도착한다. 무엇이 서운했는지는 잊어도, 그 순간 서늘했던 공기는 오래도록 몸이 기억한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따뜻한 말 한마디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에 오래 머문다. 건넨 이는 잊을지 몰라도, 받은 이는 오랫동안 그 다정함을 품고 살아가기도 한다. 말은 생각보다 깊고 먼 곳까지 흘러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살아간다.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에 그 중년 남자처럼 서늘한 바람을 툭, 떨구고 지나간 적은 없었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고단하다는 이유로 타인의 온기를 무심히 쳐내며 살았던 날들이 부끄럽게 떠오른 것은 그 직후였다.
얼마 전에는 세입자가 바뀌면서 공과금을 정산하느라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야 했다. 시간에 쫓겨 건조한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의 상대들과 대화 하던 중이었다. 어느 고객센터의 상담원은 예상 외로 차분하고 친절했다. 꼬인 절차를 하나하나 알기 쉽게 설명해 준 그녀는 통화를 마치며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객님, 좋은 하루 되세요."
"네, 수고하세요." 나는 급한 마음에 짧게 답하고 서둘러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한참이 지나 서랍을 정리할 때 쯤에야, 그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맴돌았다. 꾸밈 없이 맑았던 그 인사가 뒤늦게 마음에 고였다. 친절은 누군가 자신의 고단한 하루 중에서 애써 건네는 작은 온기다. 나는 그 귀한 마음을 받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서둘러 지나쳐 버리고 있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니, 그동안 내가 주변에 건넸던 마음들의 무게가 문득 가볍게 느껴졌다. 빚을 진듯한 알싸한 마음 끝에서, 그제야 미뤄두었던 얼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교통사고로 통원 치료를 받는다던 지인, 원인 모를 무력감으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 한다던 오랜 친구, 나는 늘 스마트폰을 켜고 짧은 문자를 보냈다.
'치료 잘 받아.'
'그럴수록 몸을 움직여 봐.'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 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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