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바꾼 건 포도가 아니라 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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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포도즙도 그릇을 만나면 다른 시간이 된다
데 알베르토 와이너리(Bodegas De Alberto)의 지하 동굴을 빠져나온 뒤에도, 어둠 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오래 남았다. 낮은 아치형 통로, 줄지어 누운 오크배럴, 사람보다 큰 푸드르(Foudre), 더 이상 쓰지 않는 시멘트 탱크의 흔적, 그리고 지상으로 올라와 만난 차갑고 거대한 스테인리스 탱크까지. 같은 포도즙도 어떤 그릇을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간과 맛을 얻는다는 사실이 그곳에서는 분명하게 보였다.
와인 양조에서 용기는 단순한 저장 도구가 아니었다. 용기는 산소의 양을 조절하고, 온도를 붙잡고, 효모 앙금과 와인이 만나는 시간을 바꾸고, 때로는 향과 질감까지 바꾸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루에다(Rueda)는 흔히 베르데호(Verdejo) 화이트 와인의 산지로 알려져 있다. 라임과 자몽 같은 시트러스 향, 회향과 아니스 같은 허브 향, 그리고 끝맛에 남는 은근한 쌉싸름함은 베르데호가 지닌 매력으로 자주 설명된다. 현대 루에다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대체로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저온으로 발효한 젊고 신선한 화이트 와인이다. 산소 접촉을 줄이고, 온도를 정밀하게 관리하며, 포도 품종의 깨끗한 향을 살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둘러본 네 곳의 와이너리에서 만난 루에다는 그 한 문장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한쪽에는 산뜻하고 청량한 현대식 베르데호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오크와 콘크리트, 유리병과 흙항아리를 통해 질감과 산화, 오래된 숙성의 기억을 오늘의 와인 안에서 다시 움직이게 하는 양조 방식이 있었다. 루에다는 과거와 현대가 서로 배척하는 곳이 아니라, 다른 용기들이 여러 맛을 함께 만들어내는 곳처럼 보였다.
스테인리스 탱크가 현대 루에다 화이트 와인의 기본을 만들었다면, 현장의 와이너리들은 다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더 깨끗하게, 더 차갑게, 더 정확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베르데호의 산뜻한 산미와 허브 향을 지키면서도 더 깊은 질감과 긴 여운을 만들 수는 없을까. 와인을 너무 빨리 닫아버리지 않고, 자연의 숨과 시간을 조금 더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을까.
그 질문 앞에서 다시 등장한 것이 콘크리트와 유리, 흙이었다.
용기의 대결이 아니라 용기의 오케스트라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현대식 스테인리스 탱크와 정밀한 온도 제어 장치를 갖춘 와이너리들이 왜 다시 무겁고 둥근 콘크리트 용기, 햇볕 아래 놓인 유리병, 오래된 진흙 항아리를 찾는 것일까. 그것은 과거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니었다. 오래된 발효 감각을 현대 양조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일이었다.
루에다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한 가지 용기만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방문한 와이너리들은 스테인리스, 오크, 푸드르, 콘크리트 에그, 유리병, 진흙 항아리 티나하(Tinaja)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었다. 네 곳의 방문만으로 루에다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현장에서 본 와이너리들의 모습은 분명했다. 한 용기만으로 답을 찾지 않고, 여러 용기를 조합해 자기 와인의 결을 만들고 있었다.
스테인리스는 베르데호의 산뜻한 과실 향과 허브 향을 깨끗하게 살려준다. 그러나 너무 스테인리스에만 의존하면 와인이 모두 비슷해질 위험도 있다. 신선하고 맑지만, 질감과 깊이에서는 단조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와이너리들은 스테인리스로 맑은 출발점을 만들고, 콘크리트로 입안의 폭을 넓히고, 목재로 구조와 긴 여운을 더하며, 유리병과 흙항아리로 시간과 산화, 질감의 다른 층을 만든다.
이것은 용기의 대결이 아니라 용기의 오케스트라에 가까웠다. 핵심은 "어느 용기가 가장 좋은가"가 아니었다. "어느 용기를 어떤 목적과 비율로 만나게 해야 베르데호의 긴장감과 질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가"였다. 루에다의 와이너리 네 곳을 돌며 나는 그 질문이 실제 생산 현장 안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았다.
콘크리트 에그, 둥근 그릇 안에서 와인이 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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