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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지덕지 얽혀있었는데... 60년 전 청계천에서 파묻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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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지덕지 얽혀있었는데... 60년 전 청계천에서 파묻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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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라는 시간이 서너 겹의 청계천(개천, 開川)얼굴에 얽혀있다. 맨살을 드러낸 물길이 빈민의 판자촌을 품어냈다. 그러다 철거되어 콘크리트 덮인 복개도로가 되었고, 그 위로 고가도로가 세워졌다. 복개와 고가도로를 걷어냈지만, 제대로 복원하지 못한 역사 유적과 옛 물길에 인공 구조물을 얹어 놓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난 1일, 청계천 일대를 답사했다.

개천은 맑지 못했다. 생활 하수와 공장 폐수가 뒤섞이고, 쓰레기가 넘쳐 났다. 사시사철 냄새가 코를 찔렀고, 장마철마다 범람하기 일쑤였다. 거기서 삶이 꾸려졌고, 아이들은 썩은 물에서 헤엄치며 놀았다. 오염과 도시 문제의 대명사였다. 그런 물을 내버려 둘 여유는 없었다(관련 기사 : 아현에서 마포까지 빼곡...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https://omn.kr/2irh9).

거대 공사판이 된 서울

개천이 덮인 건 그때부터다. 꼭 덮었어야 했느냐는 물음보다, 아픈 시대가 내몬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처참한 환경에 위험한 위생이라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상흔이 아물어 갈 즈음, 서울이 또 몸살을 앓기 시작한다. 월남과 귀환, 상경하는 인구가 봇물이다. 집과 식량은 물론 모든 게 부족했다. 서울이 직면한 초유의 과제였다. 이에 권력은 개발독재로 화답한다. 서울이 거대한 공사판이다.

근대화 상징이듯 늘어난 자동차가 아우성으로 속도를 요구한다. 흙길에 아스팔트가 깔린다.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도시 하천 곳곳을 콘크리트가 덮어나간다. 가리고 싶은 추레한 민낯마저 지워내는 덮개였다.

위생과 생존, 그리고 새로운 흐름이란 언어로 개천에도 복개라는 메스가 가해진다. 눈부신 변화로 찬사 받는다. 환경 훼손이 아닌 미래 개척이라는 믿음도 철석 같다. 하늘을 가르는 고가차도가 부국으로 가는 구름다리처럼 보였고, 외곽이 도심과 빠르게 연결되었다.

시대적 선택일지라도 상처 또한 깊었다. 햇볕이 막혀 물이 썩었고, 숨 쉬지 못하니 마냥 헐떡거렸다. 그렇다고 엄격한 기준으로 이를 재단하고 싶진 않다. 절박했던 당시가 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았기 때문이다. 배고픔을 극복하고, 전염병을 막고, 홍수를 통제하며, 외국 도시의 꽁무니라도 쫓아가겠다는 강한 욕구가 상흔처럼 남아서다.

복개 또한 개천의 역사다. 세월이 흘러 물에 햇살이 반짝이는 지금,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발전과 보존은 대립이 아니라 조화로워야 한다는 걸, 무작정 덮어버리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말이다. 그건 가난과 속도, 열망을 좇는 덮음이었고, 끙끙 성장통을 앓던 시대의 서울이 치러낸 값비싼 유산이어서다.

개천 복개의 시작

상류 일부이나, 맨 처음 개천을 덮은 건 일제다. 1937년, 경성시가지 계획 명분으로 무교동 일대를 정비 하면서다. 개천을 가로질러 구조물을 걸치고, 흐르는 물 위로 근대라는 무거운 강압을 얹었다. 일제가 강제한 건 복종과 비굴, 그리고 침묵이었다. 도성의 젖줄로써 청정한 흐름보다, 감시와 통제 대상물로 개천을 전락시켰다.

본격화는 1958년이다. 광교~청계6가까지 근대화의 망치 소리가 탕탕 거리기 시작했다. 개천은 태생부터 도성의 물줄기라지만, 그땐 도로라는 효용으로 더 무겁게 써야만 하는 도심 한가운데였다. 서울은 전화의 포연을 걷어내고, 빠르게 몸집을 불려야만 했다. 이에 더 많은 길과 공간, 토지 이용 고도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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