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순식간에 사라진 프로야구팀

쌍방울 레이더스라는 야구단이 있었다. 1990년에 창단해 2000년에 해체하기까지 꼭 10년 동안, 전북 지역을 연고로 활동했던 한국프로야구의 8번째 팀이었다. 흔히 이 팀을 가리키는 말이 '꼴찌', '약체' 같은 것들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쓰인 말은 아마도 '비운'일 것이다.
물론 그 비운의 상당 부분은 모기업 '쌍방울'이 프로 야구단을 운영하던 다른 기업들에 비해 규모가 작았다는 데서 비롯됐다. 내의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해 리조트와 건설 부문으로 확장하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야구단을 창단하는 시점에 자본금 200억 원 안팎에 불과한 중견기업 수준이었다. 자본금 50억 원 이상의 독립된 야구단 법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한국야구위원회의 가입 조건을 충족하기에도 힘이 부치는 형편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못지않은 '비운'은, 애초에 연고지의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기 어려운 배경과 연관됐다. 리그 창설 당시의 약속대로 1985년 OB 베어스가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 뒤 남겨진 충청권을 위해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며 야구팀 수가 7개로 늘었고, 홀수 체제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8번째 팀의 창단이 필요해졌을 때 당연하게 떠오른 후보지는 전북이었다. 강원과 제주 지역에 별도의 연고 팀 창설이 어렵고 충청권을 남북으로 나누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나마 도 단위 중 남은 것은 전북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전북도민들의 다수는 신생팀 창단을 환영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전북 지역에 야구팀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북도민들은 해태 타이거즈를 '광주와 전남'보다도 오히려 자신들의 팀으로 생각해 왔다.
전후 호남 야구의 출발점이 바로 1972년 군산상고의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역전 우승이라는 극적인 사건이었고, 그래서 1982년에 창단된 해태 타이거즈 선수단 대부분이 군산상고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군산시민은 '호남 야구의 심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고, 그 심장에 뿌리 내린 해태 타이거즈를 두고 또 다른 야구팀이 '적자'를 자처하며 밀고 들어온다는 이질감을 지우지 못했다.
그래서 전북 지역 신생팀 창단 소식은 곧장 호남 지역에서 전북을 분리해 당시 절대강자였던 해태 타이거즈의 기반을 쪼개어 약화시키려는 영남 정권의 흉계가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연고지 시민들의 사랑과 축복보다 더 짙은 의심과 반감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비운의 팀이었다.
빈약한 재정의 모기업에 의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연고지 팬들, 그리고 군산상고와 전주고를 제외하면 마땅히 선수를 배출해 줄 학교가 없는 척박한 터전. 신생아 레이더스의 여린 발로 걸어야 할 길은 그런 가시밭길이었다.
연고지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신생팀
1군 무대에서 치른 9시즌 중 4번의 꼴찌는 그런 점에서 의외의 선방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첫해인 1991년과 3년 차인 1993년에 간신히 꼴찌만 벗어난 것으로 포함하면 대부분의 기간 동안 최하위권을 맴돌았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1996년과 1997년에는 정규시즌 2위와 3위에 오르며 정상에 도전했고, 전주구장과 군산구장에도 북적이는 기억을 남겼다.
전체 내용보기 ...
이 뉴스, 어떠셨어요?
한 번의 탭으로 반응을 남겨요 · 로그인 불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