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휘두르는 김부장이 주는 쾌감, 다른 아빠들은 어쩌나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은퇴한 특수요원 아버지가 다시 총을 든다. 〈테이큰〉이 각인시킨 이 구출극의 골격은 이제 낯설지 않고 화제의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도 그 계보 위에 서 있다. 이런 주인공에게 힘의 결핍은 없다. 짓밟힌 약자가 이를 악물고 힘을 길러 가해자를 무너뜨리던 '성장과 설계'의 사적 응징극과 달리, 김부장(소지섭 분)은 처음부터 완성된 전사다. 시청자가 지켜보는 것은 그가 강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감춰 둔 힘을 푸는 과정이다.
이 변화는 관객의 자리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힘을 기르며 눈물을 삼키는 지난한 빌드업을, 이제 많은 시청자는 굳이 다 통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실의 정치와 불황 속에서 이미 충분히 지연되고 유예된 일상을 견디는 이들에게 허구의 시간마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은 가혹하다. 이야기 안에서만큼은 지체 없는 해방을 바라는 마음은 조급함이라기보다 지친 사람의 정직한 요청에 가깝다.
그러나 〈김부장〉은 이 즉각적 쾌감에만 머물지 않는다. 힘의 결핍이 없다고 해서 이 남자에게 결핍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가지지 못한 것은 힘이 아니라 신분의 자유다. 압도적 무력을 지녔으면서도 정작 제 이름 하나 온전히 갖지 못한 자, 그것이 김부장이다. 딸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능력을 봉인하고 소시민의 틀에 스스로를 가둔 것도 그 부자유의 다른 얼굴이다. 숨긴 힘을 꺼내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봉인되어 있던 것은 힘이 아니라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 차이야말로 〈테이큰〉의 익숙한 골격 위에서 이 작품이 자기만의 깊이를 얻는 지점이자, 이 열광의 속내를 여는 열쇠다.
봉인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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