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막막함 '...출생지 모욕하는 세상이 학생들에게 남긴 것

돌아보면 내가 동성애자임을 깨달은 건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무렵인 것 같다. 등하교를 같이 하던 순하고 눈이 예쁜 친구가 있었는데 함께 있으면 묘한 감정의 떨림이 느껴졌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때는 PC 통신조차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동성애'가 무엇인지 '이성애'가 무엇인지 그런 개념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단지 사람들이 내가 이성 친구와 있으면 자연스럽게 짝을 지어주었고, 어린아이들이 벌써 '연애'를 하냐며 농담을 던지는 상황을 종종 마주했다. 어린 시절부터 내게 세상은 여성과 남성이 부부가 되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는 곳이었다. 만화를 보든 책을 보든 거기에는 늘 이성과 짝지어진 사람들이 나왔다.
그 사이 격변이 벌어졌다. 유명 연예인 홍석천씨가 동성애자라 커밍아웃을 했고 하리수씨는 자신은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며 방송가에 데뷔했다. 이전에도 성소수자들이 뉴스나 방송에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2000년대를 전후한 시대적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이들이 연예인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례 없는 규모의 조명이 쏟아졌다.
그러니 뉴스도 매체도 사람들도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모르는 척할 수도 없었고 모를 수도 없게 되었다. 이 분위기 속에서 나는 중학교 때 처음으로 동성애자인 친구를 만났다. 내게 대뜸 커밍아웃을 한 친구는 사실 나도 동성애자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이어져 온 동성 친구를 향한 묘한 떨림의 정체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건 욕망이고 사랑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음에도 끝끝내 숨긴 이유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게 되고 진실을 마주하면 사람은 더욱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내 성적 지향을 인정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물론 마음이 가는 대로 남자들을 만났고 그들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내 삶에 다채로운 족적을 남겼다. 동성애자로 사는 데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삶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신경 쓰고 눈치 볼 게 많아진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내 성적 지향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이성애자들은 이게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내 정체성이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함은 특별한 계기가 없이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특히 90년대는 지금보다도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숨겨져 있던 시기였다. 마치 아주 깔끔하게 지워버린 것처럼. 그러면 나는 남들과 다른데 그게 드러낼 만큼 긍정적인 게 아니라는 감각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욱 직접적인 계기는 찾아온다.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전형적인 성역할을 잘 따르지 못하거나 특히 그런 아이들이 동성 친구와 가깝게 붙어 있으면 '동성끼리 사귀기라도 하는 거냐'는 식의 놀림이 따라붙었다. 이성애가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동성 간의 그런 관계는 사실 여부를 떠나 금세 조롱과 추문 거리가 된다.
아이들은 '게이'는 몰라도 어디서 들었는지 '호모'라는 단어를 귀신 같이 알아서 왔다. 조롱하고 멸시할 수 있는 대상은, 손쉽게 집단으로 괴롭히고 폭행하기도 좋았다. 아주 처절하고 잔혹한 수준으로. '호모'라고 찍힌 아이들은 심하면 제대로 학교에 다니는 게 어려울 정도로 학교폭력을 겪었다. 이건 90년대나 00년대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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