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령산 나무들의 통곡...부산의 중심에서 무슨 일 벌어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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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장례식이었다. 하얀 끈을 매단 나무들이 줄지어 통곡했다. 옅은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잎을 흔들어 대며 울었다. 붉은 끈을 매단 나무들, 페인트로 점을 찍은 나무들도 같은 운명이었다. 표시된 나무들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살고 있는 새와 곤충 같은 작은 동물들도 수풀의 보이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울었다. 이곳 황령산에서 울지 않는 존재는 단 한 종, 인간뿐인지 몰랐다.
부산 황령산에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부산'이라는 도시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곳에 우뚝 서 있었던 황령산은 최근 대규모 유원지 사업 개발 앞에 놓여있다. 나무와 풀은 베이고, 흙은 파헤쳐지며, 동물들은 자리를 잃을 것이다. 황령산의 편에 서서 싸우고 있는 황령산지키기범시민운동본부 이성근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났다.
동네 뒷산은 마구 개발해도 되는 걸까?
지난 5월 말 한창 초록이 싱그러울 무렵, 황령산을 찾았다. 부산 밖의 이들에게는 낯선 산이다. 이름난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처럼 웅장한 자연을 가진 국립공원도 아니고 서울 남산처럼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도 아니다. 해발고도 427m의 황령산은 부산진구, 연제구, 남구, 수영구에 걸친 높지 않은 도시공원이다. 근처 학교들의 교가마다 등장해 정기를 내어주는, 지역 사람들에게 친숙한 산이다. 누군가는 흔한 동네 뒷산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국립공원이 아닌 동네 뒷산은 마구 개발해도 되는 걸까?
"황령산은 원래 독립된 산이 아니에요. 백양산으로, 금정산으로 이어져 있었거든요. 이기대도 황령산의 말단부입니다. 그런데 과도한 도시화 정책에 의해서 잘린 산이 되었어요. 정상에서 보면 중간중간 시가 구역 내에 섬처럼 떠 있는 언덕들이 보여요. 그게 다 황령산에서 뻗어져 나간 지맥이 잘린 흔적이거든요. 산을 밀고 거기를 대신한 것들이 아파트예요. 쫙 포진하고 있죠."
실제로 황령산은 유구한 개발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 광산으로 개발해 광물 자원을 채굴했고, 1972년 유원지로 지정해 현재까지 관광 자원으로 개발 시도를 하고 있다. 1995년 온천 단지를 짓는다며 동남쪽 부분을 약 12만㎡ 깎아냈다. 당시 시민사회는 반발했고, 싸움 끝에 전면 백지화했다. 2000년대 다시 개발 바람이 불었다. 이번에는 실내 스키장이었다. 2007년 '스노우캐슬'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개장했지만, 운영난으로 1년 만에 폐쇄했다.
그렇게 망한 자리에 현재 부산시와 민간개발업체는 1단계 530m 길이의 케이블카와 25층 규모의 전망타워, 2단계 금련산까지 가로지르는 2.2km 길이의 케이블카, 3단계 500실 규모의 대형 호텔을 단계적으로 짓는 2조 2천억 원짜리 '황령산 유원지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에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부산환경회의, 부산불교환경연대 등 시민사회는 2024년 1월 '황령산지키기범시민운동본부'라는 이름아래 다시 뭉쳤다.
도심에 자리한 산이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도시에 사는 인간에게 소중한 자연이라는 뜻이다. 숲과 가까운 아파트를 지칭하는 '숲세권'이 부동산 신조어로 쓰이며 비싼 값에 거래될 정도로 도심 녹지는 귀한 공간이 되었다. 우리는 휴식과 운동이 필요할 때 녹지를 찾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더위를 식힌다. 최근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연구 조사에 따르면 녹지 면적이 1㎢ 증가할 때마다 지표면 온도가 약 0.23~0.25°C씩 감소한다고 한다. 나무뿌리로 흡수된 물이 잎을 통해 증발하며 대기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탄소를 흡수하는 것에 더해 도시의 열섬 현상을 막는다. 연구 자료까지 가져오지 않더라도 숲에서 상쾌해진 몸과 마음을 경험해 왔다. 황령산은 부산의 허파이다.
케이블카가 생기면 정말 '랜드마크'가 되나?
황령산 정상에서 본 부산의 밤 풍경은 아름다웠다. 시야가 흐린 날이었지만 빼곡한 아파트와 도로를 채운 자동차는 불빛을 반짝이며 도시의 밤을 수놓고 있었다. 별이 사라진 도시에 빛나는 야경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이 사라져서 불을 밝힌 게 아니라 불빛 때문에 별빛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셀 수 없이 많은 불빛의 개수는 산을 지운 자리에 아파트와 자동차가 들어선 흔적의 개수였다. 우리는 현혹되고 있었다.
'먹고 살아야 한다'라는 논리로 모든 가치를 이겨내는 '개발'은 정말 경제효과가 있는 걸까? 1000억 원 넘는 돈을 들여 만든 거대한 실내 스키장은 지금 흉물이 되었다. 개장 당시 반짝였을 황금색의 폐건물을 보며 지금 누구도 빛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에 앞서 추진했던 온천 단지를 열었으면 달랐을까? 사계절 내내 뜨거운 온천이었다가 사계절 내내 차가운 스키장이라니! 황령산의 특색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당시 유행을 따라 진행한 사업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추진하고 있는 케이블카와 전망타워, 호텔은 망한 실내 스키장을 대신해 부산의 경제를 성장시킬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랜드마크가 맨날 바뀌어요. 어느 시절에는 용두산공원이었다가, 어느 시절에는 해운대 엘시티였다가 그런 랜드마크가 어디 있어요? 허구한 날 랜드마크 타령하다가 값이 내려가고 시들해지면 또 다른 랜드마크를 추가로 만들어낼 거 아닙니까? 반짝 개장 효과는 있겠지만, 결국은 또 다른 흉물이 될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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