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의 방식으로 김종필을 탄압한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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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고 김종필 총리의 딸에게 위자료 1억 45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28일 자 보도들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4부는 김종필에 대한 전두환 신군부의 탄압으로 인해 1980년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장녀 김예리씨가 받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국가가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최규하 정부하의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밤중에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통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날 김종필 민주공화당 총재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에게 연행돼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대공처 수사단)에 감금됐다. 이 불법구금은 7월 2일까지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은 그 47일간의 강압 상태하에서 재산 헌납과 공직 사퇴 등이 강요됐다면서 고인과 유족의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9년 전 '거사' 생각이 났다는 김종필
김종필은 토요일인 5월 17일 오후까지 서울 남산 공화당 당사에서 박정희 피살 이후의 정국혼란 수습책을 강구하다가 집으로 돌아가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가 붙들린 것은 밤 9시 42분에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확대선포가 의결된 뒤였다. <김종필 증언록> 제2권은 이렇게 말한다.
"밤 11시 20분, 미니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온 군인들이 M16 소총으로 무장한 채 청구동 집에 들이닥쳤다. 군인들이 집 주위를 에워쌌고, 보안사 장모 준위가 먼저 집안으로 들어섰다."
신군부가 그에게 적용한 혐의는 권력형 부정축재다. 그래놓고도 신군부는 사법 처리를 받도록 하지 않았다. 대신, 재산 헌납과 공직 사퇴를 관철시킨 뒤에 풀어줬다.
쿠데타에 성공한 세력이 정적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죄를 찾아낸 뒤 재산과 공직만 빼앗고 풀어주는 일은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1980년에는 가능했다. 당시의 민도(民度)가 낮아서는 아니었다. 대중이 궐기하고 항의할 만한 여건이 5·18 광주학살 이후로 한동안 조성되지 않았다. 이번 서울중앙지법 판결은 뒤늦게나마 그때의 부조리를 바로잡는 의미가 있다.
한밤중에 연행될 당시 김종필의 눈앞에는 시각적으로 어두운 이미지가 펼쳐져 있었다. 위 증언록은 "1980년 5월 17일 심야, 내가 끌려갔을 때는 높은 담이 사방을 에워싸고 아름드리나무들이 컴컴한 밤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제공된 대우는 괜찮은 편이었다. 주어진 공간도 '한강 뷰'를 갖춘 사실상의 '특실'이었다.
"내가 안내된 방은 건물 2층의 한가운데 있었다. 7~8평 규모로 비교적 널찍한 방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서빙고 분실에서 가장 넓은 조사실이었다. 침대와 화장실, 책상 한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남쪽 벽에 나 있는 창밖으론 푸른 한강이 내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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