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말라는 데 왜 가냐"는 비난, 활동가의 존재 이유를 묻다
세상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빨라지며 미쳐가는데 우린 멈추지도, 생각하지도, 배우지도 않고 다가올 재앙으로 질주하기만 해요. 이 다음은 뭘까요?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멈추는 날이 오긴 할까요? -이디스 라이언스
그러니까 가지 말라는 데 왜 가는 거지? 어차피 나라에서 힘을 써서 구해줄 줄 알고 그러는 거잖아. 민폐야 민폐.
어느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특히 자국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에 관여했다 문제를 겪은 시민을 향한 비판은 국가를 건너 대개 같은 모습을 띤다. 어째서 법을 어겨가며 해외에서 문제를 일으키느냐는 것, 그게 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영국 활동가 이디스 라이언스에게 쏟아지는 비판이 꼭 그러하다.
가지 말라는 데 가서 사고치는 사람?
2019년 제작된 BBC 명작 드라마 <이어즈&이어즈>는 근미래, 그러니까 아마도 우리가 사는 2026년 즈음의 오늘과 가까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영국에 사는 라이언스 일가로, 여느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이디스 라이언스(제시카 하인스 분) 또한 이 가정의 일원이다. 드라마 초반 그녀가 뉴스를 통해 제 가족에들에게 근황을 알리는 장면이 있다. 끊임없이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는 남중국해에 중국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훙사다오란 인공섬이 있고, 이곳에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때였다. 이곳에 미국이 핵미사일을 발사했고, 마침 활동가들이 탄 배가 그 근처까지 나가있다가 피폭됐다는 해외뉴스였다. 그런데, 우리 딸이, 내 동생이, 우리 누나가 저 배에 타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가 기절초풍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디스 라이언스는 아마도 '급진적'이란 평이 붙을 법한 사회활동가다. 난민이다 소수자다 빈민이다, 늘 온갖 문제로 바빠 좀처럼 집을 돌보지 못했다. 그녀가 베트남으로 갔다가 훙사다오로 향하는 활동가들의 배에 오른 것도 그래서일 테다. 가족은 그 근황을 알지 못했다. 때는 전쟁의 가망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미중 간 무역분쟁이 그저 무역 문제로만 끝나지 않을 듯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퇴임을 코앞에 두고, 미국이 먼저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의 영유권 분쟁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촉즉발의 위기는 인공섬에 대한 예기치 못한 핵공격으로 번졌다. 라이언스가의 딸이 그 핵공격에 피폭됐다.
이디스 라이언스는 영국 활동가 신분으로 국제 뉴스에 출연해 이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2차대전 끝 무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있었던 핵폭격과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비참한 죽음을 상기시킨 그녀는 무역전쟁을 진짜 전쟁으로 바꾸고 핵무기를 사람에게 사용한 미국에게 제재가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서구 사회가 모른 척 제 삶을 이어가는 일이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더 똑똑할 필요도, 탁월할 이유도 없다
전체 내용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