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9시 출근이 힘들다면 보세요
서울 한복판, 그것도 광화문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게 되는 날들이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빌딩 숲과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은 수시로 저를 숨막히게 하지만, 점심시간 동안 짬을 내어 지척의 미술관으로 도망쳐 아름다움이라는 절대선으로 잠깐 피신할 수 있다는 것. 미술을 좋아하는 극 F 성향의 직장인으로서 이만큼 근사한 특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오전 내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후, 입맛도 밥맛도 없어진 점심시간, 저는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으로 향했습니다.
세금이 왜 이렇게 많은지 늘 투덜거리다가도, 이렇게 근사한 전시를 무료로 만나는 날에는 마음이 슬그머니 풀립니다. '아, 이러려고 내가 세금을 냈구나' 싶어서요.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 유영국 화백의 탄생 110주년 회고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전의 묵은 스트레스가 벌써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초여름의 6월은 이미 정동길에 짙은 녹음을 뿌려놓고 있었습니다.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 사이로 가로수들이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미술관으로 걷는 길, 가슴 한구석에서 거장의 삶이 지닌 궤적들이 살며시 떠올랐습니다.
유영국이라는 이름은 제게 단순한 근대 미술의 거장을 넘어, 삶의 변곡점마다 지독하리만치 단단한 현실주의적 태도를 고수한 한 인간의 서사로 다가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쿄 유학 시절 아방가르드의 선두에 섰던 '모던 보이'가 고향 울진으로 돌아와 냄새나는 어선을 타고 바다를 가르던 풍경,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망향소주'를 만들어 팔며 영덕과 울진 일대의 거상이 되었던 일화들. '만선(滿船)'이 아니면 포구에 내리지 않았다던 그의 지독한 책임감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 풍요로운 만선의 한가운데서도 저녁 식탁에 앉아 "이러다가는 평생 그림을 못 그릴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던 한 예술가의 갈증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크기였을까요.
23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월급쟁이로 살아오며, 저도 가끔 내 안의 무언가를 유예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하곤 했습니다. 그 질문들이 묘하게 겹쳐지면서, 미술관의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과 마주하는 순간 마음속 해묵은 갈증도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걷다
전시는 처음부터 예상을 조용히 비틀어 놓았습니다.
입구에서 저를 맞이한 것은 유영국의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조직 활동을 내려놓고 전업 작가의 길을 선언한, 1964년의 첫 개인전이었습니다. 연대기적 순서를 의도적으로 깨뜨린 구성 덕분에, 저는 완성된 거장을 먼저 만나고 그가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어떤 시간을 통과해 왔는지를 거꾸로 따라가는 여정을 걷게 되었습니다.
1964년의 작품들 앞에 서면, 그의 선언이 얼마나 단단한 것이었는지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설명이 요구되는 그림은 이미 그림이 아니고 군더더기다."
캔버스 위에는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 뼈대만 있었습니다. 어떤 타협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동선이 일본 유학 시절과 전후 아방가르드 실험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지금 눈앞의 저 완결된 언어가 얼마나 긴 인내의 산물인지 서서히 가슴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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