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것은 어깨 뿐"구순 앞둔 시인이 기록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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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녀 시인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했다. "11살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태어난 땅을 버리고/금지된 낙원으로 주소를 옮겼"던 시인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명과 같은 제목으로 시집을 내면서 "감히 제 시집 제목으로 삼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시인은 우리나라 나이로 구순을 앞두고 있다.
기호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은 기호를 통해 이뤄진다. 기호는 상징어 기표와 기표가 상징하는 뜻인 기의로 이뤄진다. 노시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표현은 문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와 애틋한 잔물결에 배인 나지막한 흔적에 끼인 아픔을 의미하는 기의들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분단 이전과 분단 이후의 삶을 세세하게 서사로 노래한 시인의 이번 시집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시인은 첫 장 '시인의 말'에서 "춥고 아파 눈물이 났지만/때때로 아름답기도 했던 그 시간들을/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기에 시로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은 2022년에 펴낸 <기둥들은 모두 새가 되었다>의 작품 일부를 이번 새 작품들과 구성해 이녁의 이야기를 통사적으로 구성, 전개했다. 두 시집은 그렇게 스토리가 잘게 잘게 서로 연결돼 있다.
이곳에서 명사십리까지는 몇 킬로나 될까?/망원경을 눈에 바짝 대고/강 건너 북한 땅을 눈이 뚫어져라 쳐다본다//그리운 고향 영흥/장백산 아래/동해 바다를 가슴에 품은 곳/지금은 정치 수용소가 들어선 곳 - '압록강' 중에서
최금녀 시인은 함경남도 영흥군 출생이다. 1962년 <자유문학>에 소설을 통해 등단했고 1998년 <문예운동>을 통해 시 창작을 시작해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길 위에 시간을 묻다> 등 9권의 시집을 냈다. 일어판, 영어판 시집도 냈다. <대한일보> 기자 출신이기도 한 그는 한국시인협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공초문학상, 펜문학상, 현대시인상, 여성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인은 부모님과 탈북 후 전쟁 때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남북에서 반반의 유년 시절을 보낸, 아주 특이한 성장 과정을 경험한 그 자체가 분단 역사이고 분단 민족의 아픔이다. 그 생채기들이 눈물겹도록 시로 여울지고 있다.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뛰었다/책보를 풀어놓고/신발도 벗어놓고/우리들은 뛰었다//서로 먼저 선로 가까이에 붙었다/소련군을 태운 기차가 지나가면서/별사탕 봉지를 던져주었다 - '로스께의 별사탕' 중에서
분단 민족의 남북의 아이들 풍경이 가슴 아리고 애달프게 파도칠 뿐이다.
처녀 때 남자와 말도 걸어보지 못한 엄마/공민증 챙기고/안내인에게 줄 돈 준비했다/강을 넘다가 죽더라도 아버지를 찾아가야 한다고//엄마 아니었으면/나는 지금 북쪽에서 반동분자의 딸로/아버지를 그리워하며/한평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공민증' 중에서
그렇게 '반동분자' 가족들은 남쪽으로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쟁통에 남쪽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아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부산 1950' 제목의 작품이다.
1. 럭키 스트라이크
어머니는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담배 럭키 스트라이크를 영도 다리 아래에서 팔았다. 팔말, 카멜, 윈스턴, 막 떠오르는 태양 같아서 빨간 동그라미 럭키 스트라이크는 줄을 서서 받아야 했다. 바로 내 앞에서 줄이 끊어졌다고 하면 엄마는 울었다. 우는 엄마가 싫어서 새벽 5시에 줄을 섰다. 영도 섬 다리에 어둠이 걸리고 피난민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일 때 누구 누구인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것을 팔았다.
2. 코크스
석탄을 태우면 코크스가 남았다. 코크스로 밥을 지어 먹으며 코크스가 너무 좋아서 코크스나 되었으면 했다. 영도 섬 한국도자기 공장 마당에는 몇천 도의 온도로 도자기를 구워내고 버린 석탄재가 산더미 같았다. 피난민들은 두엄을 헤집으며 벌레를 잡아먹던 시골 닭처럼 마구 재를 헤집고 코크스를 주웠다. 머리카락에도 얼굴에도 재가 붙었다. 트럭이 와서 새로 붓고 간 재는 손도 댈 수 없는 불덩이였다. 가마에서 나온 불덩이 속을 손이 드나들었다. 말갛고 고운 물방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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