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넘은 미술관,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올해부터 휴일로 다시 지정된 제헌절 날(주 5일제 도입에 따른 공휴일 조정으로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헌법의 상징성을 회복하고 국민들의 헌법 정신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다시 공휴일로 복원), 막내와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추상 미술의 대가 중 한 명인 유영국의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미술관에 들어서서는 깜짝 놀랐다.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아서였다. 휴일이어서 그런가? 싶어 안내인에게 "평일에도 이러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늘 이렇다"였다. 대기줄을 살피던 안내인은 "평일에 조금 덜하긴 하지만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전시 시작날부터 이랬다"고 덧붙였다.
대기줄이 긴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 듯했다. 쾌적한 관람 환경을 위해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 20명 내외의 인원이 들어가고 나면 안내인은 관람객의 입장을 잠시 통제했다. 그러고는 15분 남짓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입장시키기를 반복했다.
대기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다 아카이브 공간을 만났다. 전시대에는 유영국의 일대기를 연도순으로 정리한 연보와 사진이 여럿 전시되어 있었다. 아카이브 공간은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관람객의 지루함을 덜어주려는 미술관 측의 배려로 느껴졌는데 미술관 측은 이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내문을 내걸었다.
"로비의 아카이브 공간은 전시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연보와 사진, 리플릿, 잡지 등 다양한 아카이브를 통해 유영국의 삶과 작품 세계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유영국은 1916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나 1935년 일본 도쿄 문화학원 유화과에 입학하여, 무라이 마사나리, 하세가와 사부로 등 일본의 주요 추상 미술 작가들을 비롯해 김환기, 장욱진, 이중섭 등과 교류하며 전위적인 추상 미술에 관한 관심을 키웠다. 이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 협회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추상의 길로 나아갔으나 전쟁화 그리기를 요구하는 일본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어 귀국길에 오른다.
1943년 귀국해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결혼을 하고 1955년까지 가족을 부양하는 데 전념한다. 어부와 교수와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변모하며 일상을 살아가던 그는 1964년 개인전을 기점으로 전업 화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이후 생존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1979년)을 열었으며, 가나아트센터에서의 전시를 마지막으로 2002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전시는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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