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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들이 한국을 동경하게 만든 남자
오마이뉴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46년 5월, 서독의 유명 출판사 피퍼는 무명의 동양인 작가가 쓴 장편소설 를 펴냈다. 출간되자마자 신문 잡지들은 100여 편의 서평을 쏟아내며 극찬했다. 한 잡지사는 앙케트 조사를 통해 '올해 독일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책'으로 선정했다.
노벨상 후보에도 올랐던 소설가 겸 시인 슈테판 안드레스는 이미륵에게 보낸 편지에서 "간결하고 평온한 문체, 영혼을 일깨워주는 절제된 표현, 신념을 북돋워주는 휴머니즘이 마치 노련한 장인의 비단 두루마리를 천천히 펼치는 것과 같다"는 감상을 밝혔다.
평론가 루트비히 하르팅은 "<압록강은 흐른다>를 통해 수천 년의 역사와 고귀한 정신세계를 지닌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해 깊은 신뢰감을 느꼈고, 진실·자유·정의·사랑으로 사람과 사람 혹은 대륙과 바다를 연결해 두 세계가 결합하도록 다리를 놓아준 진정한 휴머니스트 이미륵에게 감사한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밖에도 수많은 독자의 찬사와 감사 편지가 출판사와 이미륵에게 답지했다. 언론인을 꿈꾸던 발터 라이퍼는 책을 읽고 한국을 동경해 외교관이 된 뒤 주한 서독대사관 근무를 자청했다. 귀국 후에도 이미륵협회를 만들어 이미륵과 그의 작품을 알리는 일에 매달렸다.
나치당 몰락의 충격과 2차대전 패배의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독일인들은 극한적인 상황에 내몰렸으면서도 순수성을 잃지 않은 주인공과 그 가족·친구들의 인간미에 매료됐을 뿐 아니라 자신들도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혔으며 서독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영어, 프랑스어, 불가리아어, 일본어 등으로도 출간됐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았던 백영훈 박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서독 정부가 한국에 1억 5000만 마르크(미화 약 3천 만 달러)의 차관을 조건 없이 제공한 배경에 이미륵 작품으로 독일인 사이에 형성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신뢰와 공감이 작용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미륵이 어떤 인물이고 <압록강은 흐른다>가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어떤 사연으로 조국을 떠나 독일에 자리 잡았고, 모국어 대신 독일어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야 했을까.
미륵불에게 49일간 치성 드린 끝에 얻은 아들
이미륵은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천석꾼 이동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로 본명은 이의경(李儀景)이었다. 딸만 내리 셋을 낳은 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미륵불에게 49일간 치성을 드린 끝에 얻은 아들이어서 어릴 적 미륵이라고 불렸고 나중에 필명으로 삼았다. 5살에 한문 공부를 시작해 10살 무렵에는 사서삼경과 통감을 모두 뗄 정도로 총명했다.
뒤늦게 신식 학교에 입학해 수학, 물리, 지리, 세계사 등 신학문을 배우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은 데 이어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암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유럽에 가겠다며 가출해 만주행 열차표까지 끊었다가 나흘 만에 집에 되돌아오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통신 강의록으로 독학해 1년 만에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 의과대 전신)에 2기생으로 입학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자취방을 얻어 1년 먼저 상경한 동기생 익원과 함께 썼다. 그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독일 철학 서적 일역본들을 읽고 존재론에 깊이 빠졌다.
1919년 3학년 새 학기를 준비하던 중 3·1 운동 소식을 듣고 만세 시위에 참가했다. 그해 4월 수립된 상해 임시정부의 비밀 조직 대한청년외교단에 가입해 편집부장을 맡았다. 이미륵은 기관지 <외교시보> 발행을 주도하고 경술국치 시위에 쓸 전단 '국치 기념 경고문'을 인쇄·배포하다가 일제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고향으로 피신한 뒤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0년 아내 최문호와 결혼한 지 7년 만에 얻은 첫딸 명주가 세 살 때 죽고 1년 뒤 첫아들 명기가 막 태어났을 때였다. 그는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조직한 대한적십자회 십자대원으로 발탁돼 간호사를 육성하는 등 임시정부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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