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할머니 꿈꾸던 친구, 흰머리의 앤 꼭 닮았네

6월 초, 대전에서 열리는 친구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친구는 지자체와 문화재단, 문화원 연합에서 주최하는 사업에 지원했다.친구가 회장직을 맡은 앤 엘 디(Nature & Life Drawing)가 후원을 받아 연 전시다.
<앤 엘 디 드로잉> 6인전에서 친구의 오랜 꿈을 품은 작품들과 마주했다. 친구를 포함한 6인은 그림을 취미로 그리는 이들로 대부분 비전공자다. 그러나 미대에서는 배울 수 없는, 50, 60년 살아온 삶의 경험과 연륜, 내공이 깊이 녹아있다. 그림을 사랑하는 순수한 열정과 가공되지 않은 참신한 시선이 작품 곳곳에 담겨 있었다. 예술이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재능 있고 실력 있는, 일반인이 맘껏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관람객 누구나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반 세기만에 이룬 꿈
미술에 재능이 있던 내 친구는 반세기 만에 화가의 꿈을 이뤄냈다. 그래서인지 펜으로 그린 점 하나 선 하나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묵직하고 섬세한 흑백이 주를 이룬 전시 작품 중에는 <빨강머리 앤> 그림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다른 작품들과 결이 다르고 다소 생뚱맞아 보여서일까. 알고 보니 친구가 앤을 좋아하는 우리 중년 친구들을 위해 특별히 그렸다고 한다.
<내친구 앤>이란 제목의 그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앤의 이미지였다. 다만 오색찬란한 꽃으로 장식한 모자를 쓴 앤의 머리카락 색이 하얬다. 나는 절로 웃음이 났다. 보는 것만으로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친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열 네살에 처음 만났던 그 친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친구는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물하는 걸 좋아했다. 내게도 그림 한 장을 쓱쓱 그려줬다. 친해지고 나서는 조곤조곤 이야기도 잘했다. 친구가 했던 말 중 지금도 기억나는 게 있다.
"난 멋진 할머니가 될 거야!"
나는 그 말에 '쟤 뭐지, 어지간히 빨리 늙고 싶나 보네'하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조금 독특하고 멋져 보였다. 앤 셜리를 알기 전에 나는 친구 앤을 먼저 만났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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