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이만희 구속이 남긴 질문, 종교와 정치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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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훈련소에 입소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조교가 훈련병 한 명을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곧바로 군홧발로 걷어찼습니다. 훈련병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습니다.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했더니,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며 군사훈련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곧 어디론가 끌려갔고 다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당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병역법 위반으로 교도소에 수감되는 일이 흔했습니다.
기독교 주요 교단은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규정합니다. 그들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수혈과 집총을 거부하며, 세속 국가에 대한 충성을 인정하지 않아 공직에 나가지 않고 투표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14만4천 명만이 특별한 구원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나는 그들의 교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해 폭행과 투옥까지 감수했던 그들의 태도만큼은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신학을 공부한 나는 과연 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희생해 보았는가. 돌이켜보면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사실 내 신앙 양심으로도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훈련은 거부하는 편이 기독교 정신에 더 가까웠을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일에 목숨을 거는 삶이 예수의 가르침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공개적으로 병역을 거부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다만 총을 들지 않는 보직으로 배치되기를 기도했을 뿐입니다.
뜻밖에도 현역으로 입영했다가 방위병으로 전환되어 향토예비군 자원을 관리하는 행정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도가 응답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해 폭행과 감옥 생활까지 감수했던 여호와의 증인 청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수십 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사상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평생에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경이롭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 김선명씨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중인 1951년 체포되어 1995년 출소하기까지 무려 45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혹독한 고문과 전향 강요도 견뎌야 했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도 손양원, 주기철, 이기풍 목사처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신앙을 이유로 수십 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는 사례는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념은 때로 신앙보다 더 무서운 힘을 지닌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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