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잃은 중학교 교사... 작심하고 25년 동안 쓴 소설의 정체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의 문학은 한국전쟁과도 관련이 있다. <여성문학연구> 2020년 제50호에 실린 김양선 한림대 교수의 논문 '박경리 초기 장편소설의 여성/문학사적 위치'는 "<토지> 이전 작품세계에서 작가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내상을 여성-젠더의 시각으로 시종일관 형상화했다"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시장과 전장>, <파시>처럼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부터, <표류도>처럼 전후를 배경으로 한 작품까지, 단편 <불신시대>부터 <쌍두아>까지 작가 박경리는 근대 전환기,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때로는 생존을 위해, 또 때로는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과 자기정체성 탐색을 위해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파멸조차 서슴지 않는 강렬한 여성들을 그려왔다."
전쟁 발발 당시, 박경리는 24세였다. 그 역시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입었다. 그가 겪거나 관찰한 개인적·사회적 내적 손상은 그의 문학에 스며들었다.
박경리가 겪은 상처 중 하나는 남편으로 인한 것이다. 남편 김행도(金幸道)는 납북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부 문건에 따르면 한국전쟁 초반인 1950년 12월 25일 스물일곱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박경리는 작고 3년 전에 나온 2005년 1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남편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박정희 시대도 무서웠지만, 난 자유당 시절이 더 무서웠어요"라며 이렇게 회고했다.
"파출소의 빨간 등만 봐도 겁이 났습니다. 입 꽉 다물고 살았어요. 내 스스로 벽을 쌓고 또 쌓고,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예요."
박경리는 남편을 떠올리며 자유당과 파출소의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연상했다. 김행도는 이승만 정권하에서 편히 살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국가보훈부가 발행한 <독립유공자공훈록> 제26권 김행도 편애서 확인할 수 있다.
김행도는 경남 통영군 사등면(지금의 거제시 사등면) 출신이다. 위 공훈록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다카오카공예학교에 재학하던 김행도는 1942년 3월경 일본인 교사와 학생의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대우로 인해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라고 기술한다.
박경리보다 세 살 많은 김행도(1923년생)는 열아홉 살 때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벌였다. 이는 그의 삶이 험난해지는 계기가 됐다. "김행도는 1944년 11월 2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라고 공훈록은 알려준다.
일제강점기판 국가보안법인 치안유지법 위반자로 낙인찍힌 인물들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하에서도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이승만 정권이 한국전쟁 발발 당일에 발포한 긴급명령 제1호는 치안유지법 위반자들을 포함한 이승만 반대세력을 친북 부역자로 엮어 처벌하기 위한 법령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반대세력을 그처럼 경계하는 속에서 김행도는 전쟁 중에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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