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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꺼낸 <호프>,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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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꺼낸 <호프>,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괴물이야. 겁나게 큰 괴물…"

예비군이라고는 여덟 명뿐인 호포항은 외부의 위협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작은 시골 마을이다. 논 한가운데 거대한 무언가에 할퀸 상처를 입은 소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소동이 시작된다. 맹수가 배를 채우기 위해 공격했다고 볼만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마을 청년 성기(조인성 분)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마을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은 단순한 사건이 아님을 직감하고 순찰차를 몰아 마을로 향한다. 하지만 그가 도착한 곳에는 사건의 원인을 알려줄 단서 대신 무너진 벽과 피를 흘린 주검만 남아 있을 뿐이다. 범석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인간의 상식과 크기를 훌쩍 넘어선 존재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2016)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 <호프>는 외계 생명체의 출현을 다루면서도, 거대한 우주보다 폐쇄된 시골 마을의 혼란을 먼저 바라보는 SF영화다. 영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난 순간보다 그 대상을 이해할 언어와 방법을 갖지 못한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 하는지에 더 오래 머문다. 좁은 길과 논밭을 가로지르는 추격, 육체를 무자비하게 훼손하는 폭력의 이미지는 인간이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큰 존재 앞에서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지를 반복해서 드러낸다.

02.

영화는 대체로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카메라가 어떤 인물을 비추고 프레임의 중심에 놓으면 그가 중요한 대상이라고 여기게 되는 이유다. 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이야기의 핵심일 가능성이 크다. 물리적 제약을 이유로 스크린은 언제나 세계의 일부만 관객에게 전달하지만, 그 일부가 가장 중요한 지점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이를 처음부터 의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은 이미 사건이 일어난 후의 흔적이며, 화면에 오래 머무는 인물 역시 목격자의 위치에 가깝다. 프레임 내부의 모든 과정이 역시 중요해 보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일은 그 바깥에서 일어나는 기분이다.

실제로 영화의 전반부(탱크로리가 전복 되기 전까지)에 해당하는 1시간 가량의 프레임 속에는 거대한 공백이 존재한다. 죽은 소의 몸에는 정체 모를 대상이 남긴 흔적이 존재하고, 마을 곳곳에서는 누군가 쫓기고 죽고 무언가 부서진다. 영화는 범석의 뒤를 쫓아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매번 사건보다 조금 늦게 도달한다. 종국에 마주하게 되는 외계인의 존재는 그동안 의도적으로 앵글 바깥에 감춰지고, 관객은 내내 빠져나갈 수 없는 불확실성에 갇히고 만다.

여기에서 의도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공백이 어둠이나 안개와 같은 시각적 장애물을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대낮의 소동은 이 영화가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 밝음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공포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숨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명백하게 보이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사건의 핵심을 보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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