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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는 못줘서 미안해요, 13억짜리 사표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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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는 못줘서 미안해요, 13억짜리 사표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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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3일 밤, 21대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과 함께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후원 계좌 알림음이 폭주했다. 단 하루 사이에 쏟아져 들어온 금액은 무려 13억 원, 입금 건수만 3만 5천 건에 달했다.

당시 권 후보가 받아 든 최종 득표율은 0.98%. 후원회 계좌를 가득 채운 13억 원은 유권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표를 주지 못하고, 후원금으로 죄책감을 대신해야만 했던 '사표(死票)의 값'이었다.

0.6%포인트 격차가 불러온 잔인한 마녀사냥

지난 대선에서 목격했던 기이한 사표 공포증은 얼마 전 치러진 6·3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똑같이 재현되었다. 개표율 90%를 넘어가던 새벽, 오세훈 후보와 정원오 후보의 격차가 0.6%포인트로 좁혀지자 정원오 후보의 당선을 기대하던 사람들의 비판은 어김없이 정의당 권영국 후보가 얻은 1.1%의 득표율로 향했다. 소수정당을 향한 거친 비난과 원망이 이전보다는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소신껏 투표한 유권자들을 배신자로 낙인 찍는 목소리는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

소수정당을 옥죄는 이 잔인한 프레임은 과연 정당한가. 소수정당 때문에 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권영국을 찍은 유권자들이 그가 없었다면 전부 차선책인 정원오에게 표를 몰아주었을 것이라는 오만한 전제가 필요하다. 동시에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한 행위가 왜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선거제도야말로 진짜 문제 아닌가.

1987년부터 이어진 사표 공포의 트라우마

사실 소수정당 지지자들에게 이 같은 광경은 잔혹한 데자뷔다.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격차는 단 0.73%포인트였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 2.37%를 두고 대선 직후 심상정 때문에 정권을 빼앗겼다는 조롱과 사과 압박이 빗발쳤다. 정의당은 이후 수년간 이 프레임의 늪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선거가 거듭될수록 차악을 최선인 양 선택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깊어지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선택지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표가 될 것이라는 실망감과 최악의 후보를 당선시킬 수는 없다는 공포 때문에 결국 거대 양당에게 투표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단순다수대표제(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이러한 단순다수제의 잔인함은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반복되며 유권자들의 학습효과로 굳어졌다.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직선제를 쟁취해 낸 1987년 제13대 대선이다. 당시 군부 독재 종식을 열망했던 압도적인 민심에도 불구하고,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의 단일화 실패와 표 분산으로 인해 결국 36.6%라는 낮은 득표율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해도 단 한 표만 많으면 청와대 주인이 되는 단순다수제의 맹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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