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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에게 "점수 그만 내라"...야구 이해하지 못했던 1등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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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에게 "점수 그만 내라"...야구 이해하지 못했던 1등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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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한국 프로야구의 창설을 기획하고 주도한 것은 청와대였다. 서울의 봄과 광주의 오월을 짓밟고 세워진 전두환 정권이 민심 수습을 위해 여력이 있을 만한 기업들을 하나씩 물색하고 제안해 가며 만든 것이 프로야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업들이 내키지 않는 사업에 뒷덜미 잡혀 질질 끌려 들어갔다고 보는 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꾸준한 경제성장이 소비여력을 만들고 있었고, 뒤늦게 해금된 컬러 TV가 기업들에게 새로운 홍보 전략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MBC는 정권보다도 한발 앞서 프로야구단 창단을 준비해 온 기업이었고, 1975년에 이미 프로야구단으로의 전환을 염두에 두고 '준프로급 실업야구팀' 자이언트를 만들어 운영해온 롯데도 있었다. 삼미는 정권의 권유를 받기도 전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기업이었고, 해태도 참여를 권유받았을 때 내건 조건은 당대의 인기 야구인 김동엽을 창단 감독으로 주선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서울을 연고지로 내줘야만 가능하다고 버티는 두산에게 '3년 후 상경'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대전에서 시작하게 한 정도가 약간의 진통이었다.

그런데 삼성이 창단을 주저한 이유가 특이했다. 삼성이 문제 삼은 것은 '현대와 대우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등 기업 삼성이, 그나마 경쟁상대로 인정해 줄 만한 현대와 대우마저 참여하지 않는 판에 끼어 우승을 한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보람이 되겠느냐는 항변이었다. 프로야구 시작 당시 삼성에겐 야구란 그저 중소기업들 몇이 모여서 복작거리는, 1등 기업 삼성이 끼어들기 영 민망한 동네잔치에 불과했다.

어쨌거나 대통령이 띄운 장단에 맞춰주는 것이 나쁠 것도 없었고, 그 좁은 무대에 끼워주기로 큰맘 먹은 마당에, 삼성이 상상할 수 있는 목표란 우승 말고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너무 야박하게 군다는 손가락질 받지 않고 '신사적으로' 이루어내야만 한다는 것이 당시 삼성그룹 수뇌부의 인식이었다. 그것은 개막전이 시작되자마자 상대 MBC 청룡을 정신없이 몰아붙여 7점 차로 앞서게 되자 '점수는 그만 내고 적절히 조절하라'는 지시가 더그아웃으로 전달되게 만든 배경이었다.

삼성 라이온즈, 우승 그 이상을 위해 만들어진 야구단

그러나 야구라는 것이, 삼성이 경험해 온 어떤 사업 영역과도 다른 '난해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야구란 사람의 몸과 몸이, 그것도 둥근 공과 방망이를 통해 마주치며 결과를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욕심껏 불러 모은 선수들의 명성이 각자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올린 훌륭한 실적을 증명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것이 동시에 얼마 남지 않은 선수 수명을 의미한다는 점까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삼성은 전문적이거나 혹은 겸손하지 못했다. 일부러 승부의 고삐를 풀었던 개막전이 결국 연장 10회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은 그들의 앞날을 예고하는 하나의 징조였다.

1970년대 초중반 국가대표 주전포수였고, 코치 겸 선수로서 삼성 라이온즈 창단에 참여했던 우용득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도 우리가 최강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알게 됐지.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걸. 그리고 너무 오래, 화려한 명성 속에서 안주해왔다는 걸." 첫해의 준우승은, 다시 말해 삼성이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더 씁쓸한 것은, 그것이 그나마 선수들이 최선 이상을 쥐어짜낸 결과였다는 점이었다.

1983년 이후 삼성은 정말 강해졌다. 이만수가 좀 더 노련하고 강해졌고, 무엇보다도 김시진과 장효조가 합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84년에는 야구 하나만은 지지 않겠다고 없는 살림을 쥐어짜며 돈싸움에서 버티려 들던 두산을 가소롭다는 듯 툭툭 떨쳐 내며 일본 프로야구의 정상급 투수 김일융까지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이만수는 포수로서 활약하면서도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고(1984년은 타격, 타점까지 3관왕), 장효조는 1983년부터 1987년 사이의 5년간 4번 타격왕에 올랐다. 또 김시진은 1985년과 1987년 다승왕에, 김일융도 1985년 공동다승왕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은 국내 최고를 다투는 투수 2명과 타자 2명을 보유한 압도적인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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