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의 운동, 그 긴장의 시간들
김영삼이 자신의 정치적 상징이기도 했던 조깅을 1997년 4월, 30여 년 만에 중단한 일은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청와대 입성 이후에 김영삼은 매일 새벽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녹지원 일대에 조성된 전용 조깅 트랙(265m)을 15바퀴 안팎 달렸다. 약 4km에 이르는 이 코스는 그의 규율과 체력을 상징하는 일상이었다. 때로는 외국 정상과 함께 조깅을 하기도 했다. 1993년 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두 정상은 새벽 6시 청와대 조깅 코스를 함께 달렸다. 서로 다른 페이스로 인해 난처한 상황도 있었지만, 김영삼은 훗날 "클린턴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달렸다"고 회고했다.
그의 조깅은 해외 순방 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미국 워싱턴에서는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배치된 조지타운대학교 인근 코스를 달렸고, 일본 오사카에서도 새벽 조깅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일정은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995년 8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오사카에서는 양국 경호기관 간 협의로 안정적인 조깅 코스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현지 공원 일대에 경호 인력을 분산 배치해 일종의 '가상 코스'를 설정한 뒤 조깅을 진행해야 했다. 다만, 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인해 예정된 코스를 끝까지 소화하지는 못했다.
대통령이 몸을 움직이는 순간, 국가는 함께 움직인다. 운동은 겉으로는 체력 단련을 위한 사적 일상처럼 보이지만, 대통령에게 그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경호의 시선에서 이는 권력의 노출을 관리해야 하는 고난도의 작전 시간에 가깝다. 장시간에 걸친 외부 노출, 예측 가능한 동선, 군중과의 접촉 가능성, 지형적 변수 등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경호의 긴장도는 더욱 높아진다. 숨이 가빠질수록 이동 동선은 길어지고, 심박이 빨라질수록 경계 범위는 확장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운동사는 곧 대한민국 경호 체계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운동은 여러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이었다. 10·26 사태 직후 박정희의 침실을 확인한 한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곳에는 침대와 안경만이 아니라 검도용 죽도까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육사 생도 시절 검도를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대구사범학교 재학 시절부터 이미 수련을 시작했다는 증언도 있다.
1960년대 육군사관학교 체육 교관이었던 검도 8단 김춘경이 박정희를 지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공식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무술에 능했던 차지철이 검도 3단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두 사람이 실제로 대련을 했다는 기록 역시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1970년대 경호실에서 검도가 공격성, 결단력, 기세를 중시하는 상징적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로 평가된다.
역대 대통령들의 운동사
박정희 이후 군 출신 대통령들의 새벽은 군인의 리듬 위에서 시작되었다. 규칙적인 기상과 절제된 식사, 빈틈없이 조직된 하루는 곧 통치 방식의 은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호의 관점에서 이러한 규칙성은 양날의 성격을 지녔다. 고정된 동선과 반복되는 일정은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외부에 의해 학습될 경우, 위해 시도의 단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이동 패턴을 교란하는 전략을 병행해야 했다. 골프장에서도 출입구는 엄격히 제한되었고, 고지대는 선제적으로 확보되었다. 비상 상황에 대비한 대체 동선도 은밀히 준비되었다. 대통령이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경호는 그보다 앞선 단계에서 위험을 예측하고 대응을 설계하고 있었다.
박정희의 검도 활동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골프와 관련된 증언은 비교적 풍부하다. 그는 골프장에서 자연을 체감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사전에 동반자를 구성하기보다, 현장에서 그날 골프장을 찾은 인물들의 명단을 확인한 뒤 지인을 중심으로 라운딩을 구성하는 방식을 즐겼다.
박정희 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김용환은 "골프장에 도착해 당일 방문자 명단을 살펴본 뒤 아는 사람을 찾아 동반자를 정하는 방식을 선호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처럼 사전에 동반자의 신원을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호 요원들은 무선망을 통해 즉각적인 신원 확인을 수행하며 잠재적 위험에 대비했다.
군 출신 대통령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스포츠는 테니스와 골프였다. 전두환이 테니스에 무게를 두었다면, 노태우는 골프를 선호했다. 이들에게 테니스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사교와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공간이었고, 철저히 선별된 인물만 출입이 허용되는 일종의 '통제구역'이었다. 그런 점에서 테니스 코트는 또 하나의 전장과도 같았다. 공이 네트를 넘는 순간에도 시선은 코트 밖을 훑었고, 마주 선 상대보다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더 중요한 감시 대상이었다. 라켓이 허공을 가르는 동안 옥상과 창문, 출입구와 통로는 엄격히 통제되었다. 경기가 길어질수록 노출 시간은 늘어났고, 이에 비례해 경호의 긴장도 더욱 고조되었다. 이들에게 운동은 휴식이 아니라 긴장의 또 다른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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