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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다정하게 폭군처럼 영감이 되어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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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호프'(7월15일 개봉)는 한국영화를 다시 사랑하게 한다. 질적으로 가장 빼어났던 200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의 대담함과 양적으로 가장 풍요로웠던 201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자신감이 이 작품엔 모두 있다. 2016년 '곡성' 이후 10년만에 신작을 들고 돌아온 나홍진 감독은 다만 그때 그 시절의 영광들을 그저 재현하는 것에 그치려 하지 않는다. 그는 특유의 야망을 스크린에 대놓고 현현한다. 나 감독은 자신의 영화 세계를 한 발자국 넓힘으로써 작가로서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순제작비 약 500억원을 짊어진 책임자로서 의무를 끌어안고 치밀하고 집요하게 그러면서도 합당하게 폭주한다. 그렇게 '호프'는 두고두고 회자될 영화가 된다.

나 감독은 '호프'를 휘어잡는다. 그리고 '호프'는 관객을 틀어쥔다. 영화를 믿게 해서 영화에 빠뜨리는 게 시네마의 본질이라면, 나 감독의 신작은 156분 간 주도권을 온전히 장악한 채 보는 이를 멋대로 쥐락펴락 하며 시종일관 영화스럽다. 불쾌와 유쾌, 충격과 시시함, 공포와 코미디를 정신 없이 오가는 이 작품을 관객은 각자 방식으로 즐길 테지만 영화다운 걸 봤다는 감상만은 공통될 것이다. '호프'는 난장판에 난장판을 더해가면서도 서두르는 인상 없이 여유가 넘친다. 가장 긴장된 순간에 팔자 좋은 농담을 늘어놓고, 기어를 올려야 할 때 부러 전개속도를 늦추고 늘어뜨릴 때면 나 감독은 자신이 러닝타임을 장악하고 있다는 걸 과시하는 것만 같다.

한 마을에 느닷없이 괴생명체가 나타나 마을 주민이 이들과 싸우게 된다는 심플한 로그라인을 채우는 건 우선 액션이다. '호프'가 보여주는 운동은 말하자면 전방위적인 총동원령이다. 별의별 총기가 난무하고 도끼와 톱과 칼이 나뒹군다. 경찰차와 트럭과 말이 뒤엉키고, 논과 마을과 숲과 도로를 오간다. 추적하고 도망가고 함께 뛰고 질주하다 끓어올라 분출한다. 온갖 인간이 뒤섞이는데 각종 크리쳐까지 엉겨붙는다. 소달구지와 우주선과 우주전함이 함께 나오고, 뜯기고 잘리고 터지고 폭발한다. 러닝타임 내내 액션 시퀀스를 이어가는 물량공세가 그 자체로 경악스럽고, 그 장면들이 대체로 한국영화에서 본 적 없는 것들이란 점에서 경탄하게 된다.

'호프'가 보여주는 혼돈의 액션은 나 감독이 '곡성'에 이어 내놓은 또 하나의 이종교배 결과물이기도 하다. 1980년대 한국 농촌이 배경인 이 작품은 크리처물의 클리셰를 빼놓지 않고 활용하면서도 여기에 서부극·호러·코미디·액션·스릴러·SF·코스믹호러 등 각종 장르 요소를 쏟아부어 그 전형성을 뒤틀고 늘이고 확장한다. 당연히 스티븐 스필버그가 생각 나고 리들리 스콧이 떠오르며 봉준호의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어떤 대목에선 코언 형제를 발견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러브크래프트와 존 카펜터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를 소환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이 보여주는 카오스는 제어하지 못해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철저히 통제해 탄생시킨 질서에 가깝다.

액션으로 가득차 있고 장르영화인데다 간단히 요약되는 스토리라고 해서 '호프'를 단순하다고 할 순 없다. '호프'는 '곡성'과 판이해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그 질서 안에서 나 감독의 작품 세계를 '곡성'과 공동 점유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이 문장은 두 영화를 관통한다. '곡성'이 삶의 불가해함 앞에서 발악하다 고꾸라져 울부짖는 한 인간을 들여다본다면, '호프'는 세계의 혹은 우주의 불가해함을 각자 방식으로 이해하고 견뎌내려는 이들을 쫓아간다. 이때 외지인의 낚시와 외계인의 습격은 다르지 않고, 외지인의 정체를 캐묻고 다니는 경찰 종구와 마을을 공격한 존재의 정체를 확인하러 다니는 경찰 범석은 사실상 같은 인물이다.

그러면서 '호프'는 나 감독의 작품 세계를 확장한다. '곡성'엔 불가해한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해 자꾸 확인하려는 자(종구)가 있다면 '호프'엔 확인하는 자(범석)와 맞서 싸워 이기려는 자(성애), 어떻게든 생존하려는 자(성기)와 도망쳐 숨어버리려는 자(낙연)가 있다. 종구가 주저앉아버린다면 범석·성애·낙연 등은 어찌됐든 내일을 도모한다. '곡성'이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캐묻고 다니"는 이를 타박하고 탄식한다면, '호프'는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를 차용해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볼 수 있다"며 그들 모두를 끌어안는다. 전작 제목이 '곡소리'였다가 신작 제목이 '희망'이 된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게다.

외계인이 서사 중심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때 작가로서 나 감독의 시각은 한 발 더 독창적으로 뻗어간다. '호프'는 외계인을 우연이라는 우주적 공포의 가해자로 단정하고 이분화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피해자로 규정하고 동일화한다. 조르·마베이요·바미기르·아이도보르 등 외계인 캐릭터의 행위와 결정이 인간 캐릭터의 그것과 대응하며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호포항에 닥친 이 대재앙이 인간에겐 인식 불가능한 존재의 장난처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계 종족에게 닥친 불행은 직업이 목수라는 양배(음문석)의 장난에서 발생한,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가 촉발한 해석불가능한 비극이니까 말이다.

이처럼 충분히 정교한 각본이지만 어쩌면 일부 관객은 조르와 마베이요 대화 장면이 담긴 에필로그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 이 시퀀스는 150분 간 집요하게 펼쳐놓은 그 모든 움직임과 이야기를 말 몇 마디로 단번에 요약·정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완전하게 끝을 맺은 이야기를 원했던 관객에게 '호프'는 다 끝내지 못한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 감독은 "충분히 완결성이 있다"고 수 차례 말했고 실제로 그러하나 누군가가 이 스토리는 이제 막 시작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해도 납득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모든 건 어쩌면 역대 한국영화 최대 제작비를 감당해내면서도 나 감독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호프'는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중요한 한국영화로 평가 받는다. 제작비 규모 면에서 그렇고 이전 한국영화가 하지 못했던 시도가 담겼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산업 향방을 좌우할 작품이 될 거란 시각이 있다. 영화계 모두가 '호프'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벌써부터 손익분기점(700~800만명) 이상의 숫자를 언급하기도 한다. 모두 알 수 없는 일이다. 한국영화산업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영향도 주지 않을 수도 있고, 기대와 달리 흥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호프'가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영화를 만들 이들에게 영감을 줄 거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이 역작은 현재 한국영화의 귀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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