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주기 이한열 열사 추모식 광주 망월동서 엄수

1987년 6월, 독재정권의 최루탄은 한 청년의 삶을 앗아갔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역사를 움직였다. 스물두 살 청년 이한열의 희생은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고,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그로부터 39년이 흐른 7월 5일. 제39주기 이한열 열사 추모식이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이한열기념사업회와 광주전남추모연대 주최로 개최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우상호 강원특별자치도지사,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강기정 전 광주광역시장, 정준호 국회의원, 안평환 통합시의원, 박상범 화순군의원, 강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장, 김익태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 노성철 연세민주동문회장, 이명자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장, 박주정 진흥고총동문회장, 진준호 광주진흥고 학생회장, 이승찬 학생추모기획단장, 이승래 유가족 대표를 비롯해 민주화운동 원로와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환갑을 맞았을 이한열" 영원히 청춘으로 남은 이름
추모식은 민중의례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시작됐다. 사회자는 개회사를 통해 "이한열 열사가 살아 있었다면 올해 환갑을 맞았을 나이"라며 "우리는 여전히 그를 스물두 살 청년으로 기억하지만, 열사가 떠난 지 39년이 됐다"고 했다. 이어 "내년은 6월항쟁 40주년이자 이한열 열사 서거 40주년"이라며 "그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익태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한열이 살아 있었다면...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이자 사회의 어른이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한열장학회는 지금까지 311명의 장학생에게 4억 5천여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고, 청년활동가 지원사업인 '이한열 소셜 펠로우십'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어갈 청년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등 유품이 지난해 국가유산청 근현대사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며 "열사의 삶이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적 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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