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잡아야 김정은 잡는다... 한러관계 복원이 대북 열쇠

착륙 전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모스크바 세레메체보 공항 일대는 목가적이었다. 5년째 전쟁을 치르는 나라같지 않았다. 2022년 2월 러우전쟁 발발 이후 매년 2~3차례 러시아를 방문했다. 그러나 지난 6월 말에는 종군기자의 심정으로 러시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출국 직전에 모스크바 인근 정유시설이 우크라이나 드론으로 강타 당했기 때문이다. 전선의 범위가 1천km 떨어진 수도권으로 확대된 모양새다.
난생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일행에게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입국절차를 밟을 때 당황하지 마세요. 한국인은 비우호국 국민이기 때문에 장시간 조사를 받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입국을 거절당할 수도 있어요." 사실 지난 4월말 중국 훈춘에서 러시아 연해주 하산 국경을 통과할 때 무려 5시간이나 조사를 받았던 쓴 경험이 있다.
입국심사 창구로 들어선 일행을 뒤에서 조바심으로 지켜봤다. 5분 만에 통과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화물 검색도 없었다. 택시를 잡았다. 바가지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무사히 입국했으니까 그 정도는 보험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따졌다. 택시기사의 변명은 그럴싸했다. 최근 정유시설이 폭격 당해 휘발유 가격이 폭등하고 택시요금도 덩달아 뛰었단다.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인 러시아도 전쟁 후유증이 만만치 않음을 엿볼 수 있었다. 심지어 해외에서 휘발유를 수입해야 할 처지란다. 모스크바의 밤은 백야 덕분에 밝았다.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한국은 NATO(No Action, Talk Only)?
다음날 6월 25일 공식일정은 오전부터 시작됐다.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동북아회의에 참석했다. 회의 도중에 루슬란 에델게리에프 푸틴 대통령 보좌관(기후·수자원 특사 겸임)과 개별면담을 가졌다. 그는 한러 양국간 기후온난화 및 수자원 분야의 협력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북극해가 급속히 해빙되는 상황에서 북극항로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있는 한국 정부를 이상적인 협력파트너로 인식한 것 같았다. 비우호국 관계가 비정치 분야의 협력에 장애요인이 될 수 없다는 소신도 밝혔다.
바로 그날에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주러 이석배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한국이 양국간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면서도 EU의 대러 공격에 공개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라"고 촉구했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푸틴 대통령의 지적이 뇌리 속을 스쳐갔다. 푸틴은 2019년 4월 김정은 위원장과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을 마친 후 어느 특파원의 남북한-러 3각협력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러시아와 북한은 철도·가스·전력망 연결에 이미 합의했다. 남한만 참여하면 된다"면서 "한국은 NATO(No Action,Talk Only!)아닌가?"라고 비꼬았다.
루덴코 차관의 발언도 푸틴 대통령의 지적과 동일맥락이었다.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노골적인 표현이다. 사실 한러수교 36년간 정상간 합의사항이 이행된 것은 5%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북러 정상간 합의사항 이행율은 3분의1 이상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어느 쪽을 더 신뢰할 수 있을까?
동아일보는 6월 26일 단독으로 '위성락 안보실장이 5월말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러시아 정부 고위당국자와 비공개 회동을 통해 한러관계 관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한러관계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뉘앙스다. 그러나 그날은 주러 대사가 러시아 외교부에 초치 당한 날이다. 한러관계가 더 악화되고 있음을 반증했다.
지난 6월 초 한·EU 정상선언의 북러군사협력 규탄, 북한군 포로2명의 한국 송환 공개 추진,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방한 등 일련의 외교조치가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불신감을 가중시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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