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공들여 딴 속기사 자격증, 시급 5천 원도 안되는 현실
전주에서 속기사의 꿈을 키워온 37세 여성 청년노동자가 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성차별과 위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지쳐 결국 30대에 고향 전주로 내려왔다. 지역에서 다시 삶을 세워보고자 요식업, 청년농부학교, 일반 회사 등 여러 일터를 거쳤지만, 어디서든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와 차별을 견디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녀가 속기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나이와 성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개인의 능력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직생활에서 겪은 차별과 억압을 벗어나, 자신의 기술로 안정적인 생계를 꾸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녀는 1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들여 속기사 3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나 자격증을 딴 뒤 마주한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속기사 일은 '전문 기술직'이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 노동시간에 비해 턱없이 낮은 단가로 운영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교육청의 학교폭력 회의록 정리 업무는 1시간 분량의 음성파일당 단가가 3만 원대 초반이다. 그러나 1시간짜리 음성파일을 문서로 정확히 옮기는 데 실제로는 훨씬 긴 시간이 걸린다. 녹음 상태가 좋지 않거나 발화자가 겹치고, 제대로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5~6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결국 1시간짜리 파일 하나를 처리하는 데 반나절 가까운 시간이 들어가지만, 그 대가는 3만 원 남짓에 그친다.
이 노동자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한다고 해도 5만 원 넘게 벌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어렵게 자격증을 따고 구한 일자리지만, 하루 10시간 가까이 일해도 한 달 100만 원을 벌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재택근무의 이면,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
문제는 단가가 낮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일을 맡기 위해서는 단가에 대한 비밀유지 서약서까지 작성해야 한다. 회사는 상대 업체에 단가가 알려지면 경쟁력이 떨어져 손해를 본다는 이유를 든다. 그러나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받는 단가가 적정한지, 시장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업무에 대한 정당한 기준 없이 회사가 지정하는 단가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구조다.
속기사 노동자는 일거리 앞에서도 불안정하다. 업무를 잡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해 빠르게 클릭해야 하고, 조금만 늦어도 일거리를 놓친다.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단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일거리조차 잡기 어렵기 때문에 부당한 조건을 따지기 어렵다. 비밀유지 서약서에 서명하라는 요구가 부당하다고 느껴도 거부하기 어렵다. 일거리를 받지 못하면 곧바로 생계가 막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속기사 특수고용노동의 현실이다. 노동자는 회사에 종속되어 일하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 일의 단가는 회사가 정하고, 일감 배분 방식도 회사가 통제한다. 그러나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수입, 장시간 노동의 부담은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속기사라는 직업은 종종 기혼여성들에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로 소개된다.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육아나 집안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으며, 능력에 따라 고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현장의 현실은 다르다. 재택이 가능하다는 말은 안정적인 노동조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노동시간은 흐려지고, 업무와 생활의 경계는 무너지고, 저임금은 개인의 사정 속에 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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