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연령 더 낮추자는 李…숙의 거친 시민은 달랐다
몇 살부터 형사처벌해야 '미약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까.
이재명 대통령이 강력·중대·반복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한해 촉법소년(현행 만 10~14세) 연령 상한을 한 살 낮추는 방안을 보고받고 "너무 미약하지 않냐" 며 재검토를 주문했다. 조건부가 아니라 일률적으로, 한 살이 아니라 두 살 이상 낮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견도 내비쳤다.
성평등가족부가 진행한 숙의토론에 참여한 시민 212명의 입장도 처음엔 이 대통령과 비슷했다. 88.6%가 연령 하향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단 하루의 숙의토론을 거친 뒤 모든 범죄에서 연령을 일괄 하향해야 한다는 의견은 30.2%로 줄었다. 무엇보다 시민들은 형사처벌 가능 연령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절차 참여 보장과 소년원·보호시설 확충 등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요즘 애들은 성숙하니 책임도 져야?"…생각 크게 바뀌어
성평등가족부가 지난 14일 공개한 시민 212명의 촉법소년 연령 하향 관련 숙의토론 결과에 따르면, 숙의토론 전후 시민들의 인식은 큰 변화를 보였다.
숙의토론 전 조사에서 시민들은 '촉법소년의 신체·정신적 성숙이 빨라져 14세 이상과 마찬가지로 저지른 죄에 책임을 질 수 있다'(44.9%)는 점을 연령 하향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숙의토론을 거치자 해당 사유를 고른 비율은 28.2%로 낮아졌다.
지난 4월 진행된 숙의토론 현장에서 시민들은 "아이들이 지적 성장은 했으나 사회적 책임감은 성장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알려 달라", "피아제 인지발달이론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11세부터인데 촉법소년 기준이 14세여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며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규범 이해 능력과 실제 행동 통제 능력은 별개의 문제이며, 가정환경·정신건강·교육환경 등 환경적 요소 역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취지로 각종 근거 자료를 제시했다. 관련 학습을 마친 시민들은 "(아이들의) 범죄 관련 정보 접근량과 판단 능력은 별개이며,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여론이 실제 법감정과 다를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촉법소년도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긍정 인식 증가
공론화를 거치며 촉법소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과거보다 촉법소년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데 동의한 비율은 기존 84.9%에서 69.3%로 15.6%p(포인트) 줄었다. '형사처벌이 소년의 범죄와 재범 가능성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인식도 69.8%에서 59.4%로 10.4%p 감소했다.
촉법소년의 변화 가능성을 긍정하는 인식은 20%p 이상씩 증가했다. '촉법소년은 가정·학교·지역사회의 지원과 적절한 교육·치료가 있으면 변화할 수 있다'는 인식은 기존 59%에서 83.5%로 24.5%p 올랐고, '소년법상 보호처분이 소년의 비행 예방과 교화에 도움이 된다', '처벌보다는 범죄 예방 지원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인식도 각각 20.3%p, 22.2%p 상승해 65.1%, 80.2%의 응답률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숙의 전 기초조사 당시 4.9%에 불과했던 '현행 유지' 의견은 숙의 자료집과 동영상 등을 개인적으로 학습한 뒤 진행한 1차 사전조사에서 5.7%로 높아졌고, 숙의토론 이후 사후조사에서는 17%까지 올라 가장 큰 변화를 보였다.
반면 기초조사 당시 88.6%에 달했던 연령 하향 찬성 의견은 1차 사전조사에서 37.3%로 크게 줄었고, 숙의토론을 거친 뒤 실시한 사후조사에서는 30.2%로 더 낮아졌다.
처벌보다 보호시설 확충…'진짜 대책'으로 시선 이동
그럼에도 시민참여단의 46.7%는 강력·중대·반복 범죄에 한해 촉법소년도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처벌 범위는 최소한으로 조정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바뀌었다.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현행보다 2세 이상 낮춰야 한다는 응답은 감소했고, 1세만 낮춘 13세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 같은 인식 변화의 배경에는 현재의 소년사법·치료·교육 시스템이 소년들을 충분히 교화할 만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숙의토론 전 연령 '현행 유지'에 투표한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꼽은 이유는 '낙인과 재범 우려'(66.7%)였지만, 사후조사에서는 '소년원·보호시설과 치료·교육 프로그램, 전문인력 등 인프라 보강이 우선'이라는 응답이 63.9%로 가장 많았다. 연령을 낮추는 등 처벌 강화를 논하기에 앞서 소년사법 인프라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숙의 전후 47.2%p 증가했다.
'촉법소년의 사회 복귀 및 교화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도 토론 이후 16%p 증가했다. 숙의를 거치며 시민들은 단순히 촉법소년을 처벌해 재범을 막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데 공감했다.
개방형 설문조사에서 시민들은 "형사처벌이 가능한 나이를 조절하는 것 외에도 촉법소년의 범죄나 문제 행동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이 요구한 추가 조치는 크게 세 가지로 ①소년사법 운영체계 개선 ②피해자 권리 보호 강화 ③소년 비행 예방이었다.
①소년사법 운영체계에서는 과밀 상태인 소년원과 치료시설을 확충하고 교화 프로그램을 내실화할 것을 주문했다. 촉법소년을 관리하는 보호관찰관 등 전문인력을 늘리고 관련 예산도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특히 경미한 범죄는 경찰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소년부 전건송치제도를 개선하되, 경찰이 표준화된 조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②피해자 권리 측면에서는 현재 소년사법 절차에서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피해자의 재판 진술권과 알 권리 등이 소년법 개정 과정에서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스마트워치 보급 등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완전히 분리하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치료·심리·정서적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가해자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뒤에도 재범을 저지를 경우 가중처벌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③소년 비행 예방 차원에서는 자녀(아동) 수당 지급 시 부모 교육을 의무화하거나 학교 내 범죄 예방 초기 단계에서 교사가 개입할 수 있도록 교권을 회복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지역사회와 학교가 협력해 위기 청소년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시민들은 "현 제도의 정비가 선결돼야 한다. (이미) 구축된 제도에서도 잘 운영되지 않는다고 해서 연령을 하향하기보다 현행 제도에서 가능한 부분부터 보완해야 한다"며 "연령 조정 논의를 넘어 소년법 전반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작 시민들이 숙의 끝에 '너무 미약하다'고 느낀 것은 촉법소년에 대한 처벌 수위가 아니라, 이들을 안전한 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었던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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