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청산하려던 은둔형 작가가 호텔 지하에서 본 것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기 작가 '옴'은 아일랜드의 한적한 시골 호텔을 찾아 1주일간 머물기로 한다. 자신의 근작 <정복자> 3부작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다. 부모님의 유골을 당신들이 신혼여행을 왔던 곳에 뿌리기 위해서다. 소설 퇴고를 앞두고 옴은 신경이 곤두선 것처럼 보인다. 가족의 추억이 깃든 곳이지만, 도착부터 직원과 언쟁을 벌이고 자신을 알아보는 팬에게도 퉁명스럽게 대할 뿐이다. 소설 마무리도 난항이다.
호텔엔 기이한 점이 하나 있다. '허니문 스위트 룸'은 이름과 달리 문이 잠긴 채 봉쇄된 상태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녀의 지하실로 연결되기에 봉인했다고 한다. 옴은 괴소문을 믿지 않지만, 어쩌면 부모님이 신혼 때 그 객실에 묵었을지 모른다는 호기심이 생긴다. 게다가 기이한 환영을 체험하며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던 직원 '피오나'가 실종되자 잠긴 공간과 연관 있다고 여긴 그는 금단의 문을 연다.
21세기 공포영화의 새로운 물결, '포크 호러'
작렬하는 무더위 속에 매주 새로운 공포영화가 개봉한다. 방학과 휴가철을 겨냥한 반짝 특수를 노리고 다양한 기획과 소재로 관객에게 '충격과 공포'를 던지려는 작품이 대기 중이다. 공포 장르는 상대적 저비용에 신진 창작자와 배우 등용문으로도 권장되는 참이다. 불경기에 시달리는 극장가에서도 이젠 여름 한 철을 넘어 꾸준히 틈새를 메우며 사랑받는다. 그런 와중에 참신한 실험도 종종 나오지만, 적잖게 기존 흥행공식을 답습하는 모방작, 아류작도 양산된다.
공포영화는 현실에선 경험하기 힘든 두려운 상황을 조성하는 배경으로 장르를 세분화할 수 있다. 우선 가장 무서운 건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든 '사람'이다. '살인마'가 인간 도살장을 만들거나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 다음은 '야수'다. 인육에 맛을 들인 육해공 맹수가 출몰한다. 혹은 인간이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자연 현상 그 자체가 재앙이 된다.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믿는 이들은 어떤 악의나 원한이 필시 존재하기 때문이라 상상한다.
근래 국내 영화계에서 '오컬트' 장르가 떠오르는 데는 원초적 믿음과 두려움이 복합된 감정도 작용한다. 그저 한이 서린 특정 현상을 넘어 민담이나 전설, 역사적 사건과 결합해 말초적 공포를 뛰어넘는 논리와 개연성을 부여하면서 새롭게 분류된 유형이 이른바 '포크 호러'다.
<호컴>은 이 신흥 장르 변주에 도전한다. 서구에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소재를 생성하는 켈트(게일) 아일랜드 신화와 전승에서 공포의 근원을 추출한다. 여기에 현실 인간들의 감추고픈 상처와 후유증, 주변에서 종종 목격할 법한 부조리를 양념으로 끼얹는다. 기본 공식을 준수하면서 까다로운 눈높이의 장르영화 관객에게 선택받기 위한 정교한 조합을 시도한다. 대개 신인 감독이 저지르는 배합 실패 대신, 모범생의 태도로 참고 사례를 연구한 결과다.
초현실적 공포
주인공은 초현실적 배경에 기반한 소설을 집필하지만, 정작 '귀신'은 믿지 않는 부류다. 마치 현실 공포만화의 상징과 같은 작가인 이토 준지가 '귀신 같은 게 어디 있냐?'는 태도처럼 심드렁할 뿐이다. 호텔에 도착할 때부터 과도하게 오지랖을 부리거나 저서에 사인을 청하는 직원에게도 불편한 감정을 가감 없이 노출한다. 책은 감명 깊게 읽었는데 실제로 만나면 정이 뚝 떨어지는 작가 부류다. 어떻게 보면 명성과 권위를 방패로 자기 하고픈 대로 막무가내 행태다.
따지고 보면 그만의 사정이 있다. 이름만 대면 사람들이 알아보는 유명 작가의 삶이지만, 그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 음침하고 어두운 내용의 소설을 써내는 은둔형 작가의 전형이다. 게다가 성장 과정은 쉽게 꺼내기 힘들 정도로 우울한 과거로 점철되어 있다. 엄마는 그가 10살도 되기 전에 촉법소년의 오발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엄마의 사고 이후 술독에 빠져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그는 이곳에서 과거를 청산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지만 기구한 과거사란 게 그렇게 간단히 해소될 리 없다. 한 인간에게 오랜 세월 누적된 후유증은 주인공이 호텔로 들어서는 (과정에서 바깥세상과 단절되는 효과를 조성하는) 숲속 어두운 터널처럼 당사자의 머릿속 깊숙이 터를 잡은 채다. 뒤틀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왜곡된 형태로 옴을 지배하기에 한편으론 불편한 상상력을 불러오면서도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이래서는 내심 그가 기대하는 과거와의 단절, 건전한 어른으로 도약은 요원하다.
불가사의한 배경을 활용하는 창작을 장기로 하면서도 정작 냉소적 합리주의자로 보이는 주인공에게 호텔은 운명의 시험대가 된다. 거듭 포착되는 괴이한 현상과 섬뜩한 징후들, 호텔이 지어지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마녀의 지하실 괴담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정서적 감응을 극대화하는 환각 버섯을 우연히 섭취하는 것은 과거 히피 세대가 영적 체험을 위해 다양한 약물 복용을 감행하던 것과 같은 작용을 한다. 이제 보이지 않던 초자연적 존재와 과거의 기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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