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육아를 대신해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10분 소개팅'이 유행이라고 한다. 열 쌍의 남녀가 10분씩 자리를 바꿔가며 대화하고,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앱으로 애프터를 신청한다. 시간 낭비 없이, 조건에 맞는 상대를 효율적으로 걸러내는 방식이다. 연애도 이제 효율성 최적화의 대상이 됐다.
내가 연애하던 시기의 끝자락엔 밥도 안 먹고 차만 마시는 소개팅이 등장했는데, 그것도 참 매정하다 싶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10분 소개팅이라니, 어쩌면 이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리고 이시대 효율성의 극치는 AI로 대변된다. 알고리즘에 따라 AI가 모든 걸 대체해 준다. 주식의 PER을 계산해 주고, 보고서의 근거와 출처를 찾아준다. 유튜브는 내가 볼 영상을 먼저 알고, 쇼핑몰은 내가 살 물건을 미리 추천한다.
그렇게 효율성은 이 시대의 종교가 됐다.
나 역시 그 종교를 믿었었다. 스스로를 효율성 맹신론자라고 불러도 될 만큼, 모든 것을 최적화하며 살았다. 그 증거는 밥솥이다. 임신 중반까지, 더 정확히는 병원에서 밥솥밥을 먹을 것을 권장받기 전까진, 나는 밥솥을 사지 않았다. 햇반이면 충분했다. 3분이면 끝나고, 설거지도 없고, 보관도 간편하다. 이보다 효율적인 선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효율성, 절반의 세계
그렇다면, 효율성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비효율? 아니다. 더 솔직한 단어가 있다. 귀찮음이다. 그리고 육아는 바로 이 '귀찮음'이 극대화된 세계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결국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 밥솥을 샀다. 즉석밥의 효율성보다 밥솥밥의 정성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엄마의 정성이 아이에게 실제로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는 모른다. 그냥 본능적인 엄마의 마음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효율성이란 잣대로 측정되는 세상을 살았다. 1인분의 삶은 깔끔하고 예측 가능했다. 기쁨도, 보람도 대부분 성과에서 왔다. 더 잘하고, 더 빠르고,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이뤄낼 때 만족이 왔다. 그 세계가 세계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날, 그 세계가 깨졌다. 더 정확히는 내가 몰랐던 세상의 절반이 열렸다. 2인분, 어떤 날은 3인분의 삶 속에서 효율성은 더 이상 유일한 잣대가 아니었다. 밤새 안아주고, 밥을 먹이고, 등원 준비를 하는 귀찮음의 연속 속에서 나는 전혀 다른 기쁨을 만났다. 효율로 설명되지 않는, 그래서 더 선명한 감정이었다.
마오더슝은 '귀찮으면 지는 거야'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절반은 귀찮음이고, 다른 절반은 귀찮음을 해결하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지금 온몸으로 매일 배우는 중이다.
육아, 정성 가득한 비효율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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