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오신 우리 마을"에 이어진 46년간의 비극

AI 통합 요약
정부가 악성·반복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공무원 개인 책임에서 기관 책임 중심으로 체계를 전환한다. 갈등조정담당관·민원매니저 같은 전담 조직 신설, 단시간 대량 민원 시 전자민원창구 이용 제한 등 기술적·제도적 조치를 도입하며, 폭언·폭행 등 위법행위에 대해 기관이 직접 고소·고발하고 피해 공무원을 법률·심리 지원하기로 했다.
진보 성향: 공무원 개인이 악성 민원을 감당하도록 방치하지 않고 기관이 책임지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피해 공무원의 법적 지원과 심리 회복 지원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중도 성향: 민원 처리 효율성 향상과 기술적 제도 개선을 강조하며, 전담 조직 신설과 전자민원 이용 제한 같은 행정 시스템 개편으로 악성 민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사건의 의미는 고사하고, 그 사건의 발생 자체를 알기 힘든 시대가 있었다. 언론이 계엄 당국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던 1980년이 그랬다. 그해 4월 23일 <동아일보> 사회면의 한 구석에 짧은 기사가 실렸다.
강원도경은 22일 장성경찰서장 홍응수 총경과 정선경찰서장 홍문섭 총경을 대기 발령하고 장성경찰서장엔 인제경찰서장 김일권 총경을, 정선경찰서장엔 횡성경찰서장 권근호 총경을 각각 발령했다.
이 기사를 읽고 강원도 정선의 작은 탄광 마을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장성경찰서장 홍응수는 그해 4월 21일 밤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뒷편 객실(안가)에서 보안부대장, 중앙정보부 조정관, 정선경찰서 정보과장 등과 모여 있다가 광부들에게 붙들려 폭행을 당하고 권총까지 잃어버렸던 인물이다. 같은 날 <경향신문> 1면 하단에 또 하나의 기사가 실렸다.
정부는 23일 상오 중앙청 후생관에서 신현확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각료간담회를 열고 현안 문제를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총리와 진의종 보사부 장관, 주영복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각 부처 장관과,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 이희성 계엄사령관 등 권력 실세들이 모두 참석했다.
전두환을 비롯한 당시 권력의 실세들과 국가 핵심 각료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는 그 '현안 문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추측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사북 광부 집단난동" 등의 자극적인 제목이 거의 모든 조간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당일 새벽 극적인 노사정 합의로 모든 것이 종료된 시점에서, 이미 3일이나 지나버린 싸움의 이유와 동기에는 아랑곳없이, 이유 없는 난동과 가학적 이미지로 덧칠된 '사북'은 굶주린 자들을 위한 먹잇감처럼 세상에 던져졌다.
하나의 사건, 여러 개의 시각
한 달 후 광주 시민들에게 그랬듯, 당시 신군부가 장악한 언론은 사북 광부들을 '폭도'로 규정했다. 오랫동안 광주라는 이름 뒤에도 따라붙었던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사북이라는 이름 뒤에 '사태'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을 더 자연스럽게 여겼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두고 이런저런 논평을 쏟아냈다. 1980년 4월 24일자 <경향신문>에는 "사북 '동원탄좌' 집단 난동… 각계의 소리"라는 제목으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실렸다.
"광부들의 동기는 이해하지만 폭력은 잘못이다. 특히 당사자도 아닌 지부장 부인에게 사적인 형벌을 가한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김덕성, 원증산업 대표)
"이제까지 노동3권을 억압해 왔고 기업은 정부 비호 아래 노동자 권익을 무시해왔다는 반성이 필요하다."(김춘봉, 변호사)
"여자를 상대로 린치를 가한 민중 저변층의 난동, 사태를 그렇게 몰고 갈 줄 밖에 모르는 졸렬한 당국, 두 계층에 대한 불신은 내일의 기대를 어둡게 한다." (이상일 성균관대학교 교수)
그러나 신군부의 의도나 사람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사북에서 일어난 사건의 역사적 의미는 여러 면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북'이라는 충격파
가장 먼저 사북사건의 의미를 알아 본 것은 존재감 없던 광부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던 언론인들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사북사건에서 평화시장(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항거 이후 촉발된 청계피복노조의 노동 운동) 못지 않은 시대적 상징을 보았다.
<평화시장 농성>이나 <사북의 소요사태>는 이미 노사문제가 어떤 한계에 도달해 있음을 뜻한다. 이들 사태는 국지적인 직장 범위에서 일어난 '사건적' 차원을 벗어난 전환기 산업 사회의 심각한 진통 현상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한계점 이른 노사문제 심층분석", <경향신문> 경제부, 1980년 4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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