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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비 부족하다며 사퇴한 영국 전 국방장관, 나라 곳간 맡았다

뉴시스 속보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국방비가 부족하다며 지난달 사퇴한 존 힐리(66) 전 영국 국방장관이 새 정부에서 국가 재정을 총괄하는 재무장관으로 돌아왔다. 국방비 확대와 생활비 부담 완화, 복지지출 관리라는 상충하는 과제를 이제 직접 풀어야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앤디 버넘 신임 영국 총리가 힐리를 재무장관에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7일 집권 노동당 대표로 선출된 버넘 총리는 20일 찰스 3세 국왕의 임명을 받아 총리에 취임했다.

영국 재무장관은 각 부처의 지출과 투자 규모를 좌우하는 핵심 각료다. 공식 관저는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 바로 옆 11번지다.

이번 인선은 예상을 벗어났다. 힐리는 최근까지 유력한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1997년부터 하원의원을 지낸 중진으로 당내에서 두루 신망을 얻고 있다. 다만 그의 구체적인 경제정책 기조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힐리는 노동당이 14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2024년 국방장관에 올랐다. 그러나 키어 스타머 전 총리가 약속한 수준만큼 국방예산이 실제로 배정되지 않았다며 지난달 사퇴했다. 힐리의 사퇴는 당시 당내 퇴진 압박을 받던 스타머 전 총리에게 큰 타격이었다.

힐리에게 재무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고든 브라운 당시 재무장관을 보좌했고,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재무부에서 정무직을 맡았다. 이후 지방정부 담당 장관으로 지역 경제정책을 다룬 경험도 있다.

힐리는 이달 BBC 인터뷰에서 재무부를 “역설적인 조직”이라고 불렀다. 뛰어난 관료들이 모여 있으면서도 지출 억제와 재정건전성을 앞세우는 재무부의 경직된 관행이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집행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했다. 국방비 지출은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버넘 총리는 아직 경제정책의 세부안을 내놓지 않았지만 지난 40년간 이어진 경제 기조와 결별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해 지역 성장을 끌어내고, 상하수도·주택·에너지·교통 등 필수서비스에 대한 공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생활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첫 대책은 21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1980년대 영국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며 “정치 권력은 중앙에 집중됐고 경제 권력은 민간에 넘어갔다. 영국 곳곳에서 산업 기반이 무너졌고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버넘 정부가 맞닥뜨린 경제 여건은 녹록지 않다. 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지역 간 경제 격차도 크다. 고물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막대한 국가채무 탓에 정부 지출의 상당액이 이자 지급에 쓰이고 있다.

중동 전쟁의 여파도 경제 전망을 흐리고 있다. 최근 수개월간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가정의 에너지 요금 부담이 커졌고, 영국 중앙은행이 올해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도 사실상 사라졌다.

버넘 총리가 약 10년간 시장을 지낸 맨체스터의 성장 경험은 그의 경제구상이 실현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다만 맨체스터 성장의 토대는 그가 취임하기 전부터 마련됐다는 평가도 있다. 다이앤 코일 케임브리지대 공공정책 교수는 “지역을 되살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정책과 리더십의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넘 총리가 맨체스터에서 내세운 ‘친기업 사회주의’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기업 투자를 끌어들이면서 필수서비스에 대한 공공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지방정부가 추진할 주택 건설과 돌봄 서비스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부유세를 도입할지도 미지수다.

힐리의 전임자인 레이철 리브스는 복지·행정 등 경상지출을 세수로 충당한다는 재정준칙을 세우고 국채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노인들의 겨울철 난방비 지원과 복지지출을 줄이려다 노동당 내부의 반발에 부딪혀 두 정책에서 모두 물러섰다.

힐리도 재정준칙과 복지·국방비 지출 압박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복지지출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정부는 국방비를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힐리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10년 사이 영국의 아홉 번째 재무장관이기도 하다.

버넘 총리는 재정준칙을 지키되 그 범위 안에서 지출 여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나오자 영국 10년물 국채금리는 5.04%로 올라 약 두 달 만에 5%를 넘어섰다. 국채금리 상승은 정부의 차입비용이 커졌다는 뜻이다. 힐리가 자신이 비판해 온 재무부의 관행을 바꾸면서도 시장의 신뢰를 지킬 수 있을지가 첫 시험대라고 신문은 짚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yunghp@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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