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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마켓 나온 20년 동안 쓴 일기장, 놀라운 방식으로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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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마켓 나온 20년 동안 쓴 일기장, 놀라운 방식으로 팔렸다

통이 넓은 힙합 바지를 바닥에 끌고 가며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던 청년이 길모퉁이에서 원색으로 머리를 과감하게 염색하고 가죽 재킷을 걸친 여자친구를 만나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골목을 나란히 걸어간다.

골목 한켠에서 통기타를 메고 서툰 코드 몇 개를 짚어보는 인디 뮤지션을 지나, 단독주택도 상가건물도 아닌 듯한 2층짜리 건물 앞에 선다. 어딘지 모르게 서툴고 깔끔하지 않은 입구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짝이 맞지 않는 빈티지 소파와 테이블마다 놓인 유리 재떨이, 세월의 흔적으로 가장자리가 바랜 예술영화 포스터들이 두 사람을 맞이한다. 정작 주인 사장님은 크게 반가운 내색을 하지 않지만, 손끝으로 내어놓는 요리만큼은 너무나도 기가 막혔던 그 곳. 투박하지만 속 깊은 사장님의 온기가 가득했던, 그때 그 시절 우리의 홍대.

2000년대 초반 무렵.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 안연정(활동명 아랑, 아래 아랑)에게 이런 홍대는 이상하게도 매우 안전한 곳이었다. 거창한 성공을 좇기보다, 자기답게 살기 위해 기꺼이 노동하고, 그 작은 벌이로 작은 가게와 작업실을 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변변한 소속 하나 없어도 주눅 들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하고 노는 그들의 풍경과 그들이 만든 홍대의 분위기는 마치 아랑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돼. 네가 살고 싶은 방식을 찾아가며 살아도 괜찮아."

시간이 흐르면서 홍대 앞 풍경도 조금씩 변해갔다.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지만, 작은 가게와 작업실이 있던 자리에는 더 비싼 임대료와 더 익숙한 브랜드가 들어섰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하고 놀던 사람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거나 밀려났다.

사라져가는 홍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아랑은 질문을 던졌다.

"자기다움이 도시의 언어가 될 수는 없을까?"

그 질문을 붙잡고 20여 년. 도시기획자, 문화기획자, 변화전략기획자 등 '기획자'로 성장한 아랑은 홍대에서 느꼈던 위로와 격려, 안전했던 감각을, 도시를, 다른 자리에서 다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통역사'이자 '번역사'로 살았다.

(*도시의 언어: 자기답게 살아가는 다양한 삶들을 이해하고 담아내는 따뜻한 말과 그 삶들을 모두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공동체의 규칙. 한 사람의 취향이나 바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공동체의 질서 안에 함께 담아내고자 하는 사회적 약속.)

우리 도시의 풍경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꿔온 아랑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돈으로 사는 삶에서 내 손으로 만드는 삶으로

아랑이 홍대 인근에서 처음 시도했던 도전은 2006년 문을 연 '공공시장 땡땡마켓'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홍대 앞 길거리에서 열린 이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의 장소가 아니었다. 돈으로 거래할 수도 있었지만, 돈만이 유일한 교환 수단은 아니었다. 각자가 가진 재료와 기술, 경험과 이야기까지 거래의 대상이 되는 조금은 특이하고 그래서 어쩌면 더 풍요로운 시장이었다.

표기(OO마켓) 그대로 어떤 것이든지 거래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자투리 종이와 페인트 같은 남은 재료를 가져와 팔았고, 누군가는 재봉틀 같은 소공구를 들고 나왔다. 어떤 사람은 그 도구를 다루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거래에 참여했고, 또 어떤 사람은 동네에서 수집한 열매로 술을 담가 나눴다. 지금이야 독립출판, 제작 워크숍, 로컬 마켓 같은 말들이 익숙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방식의 거래와 만남은 낯설고 새로운 풍경에 가까웠다.

"한번은 20년 동안 쓴 일기를 들고 나온 참가자가 계셨어요. 누가 그 일기를 살까 싶었는데 어떤 중년 남성분이 그 일기를 사겠다고 나서시더라구요.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죠. 한 사람의 오랜 시간이 담긴 일기에 얼마를 매겨야 할지 어느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했어요. 결국 해당 중년 남성분이 다음 주에 자신의 일기를 복사해 가져오셨고, 두 사람의 거래는 돈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건네는 방식으로 마무리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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