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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떠돌면서 조국이 광복 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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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떠돌면서 조국이 광복 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독립지사 일송(一松) 김동삼은 1878년 6월 23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동 278번지에서 태어났다. 이 주소는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기재된 것인데, 도로명주소로 바꿔보면 '내앞길 7-5, 내앞길 7-7' 두 가지가 나온다. 지번이 뒷날 둘로 분할된 모양이다.

생가터를 찾아 확인하면 '내앞길 7-7'에 태극기, 생가터 표지석,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국가보훈부 공훈록의 '천전 278'은 '내앞길 7-7'로 바꿔 놓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요즘은 일반적으로 지도가 아니라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찾는데, 번지수로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이곳을 답사했다.

'천전리'가 '내앞길'로 바뀐 것은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나타낸 결과이다. 본래 내앞마을이던 것을 1914년 일제가 행정개편을 하면서 천전리(川前里)로 기록한 결과다(내[川], 앞[前], 마을[里]). 이런 예는 대구 '앞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총독부는 전산(前山)으로 표기했지만 우리 민족은 따르지 않고 순우리말 "앞산" 이름을 유지했다.

김동삼 지사의 이름은 본래 긍식이었다. 1913년 무렵, 중국 동삼성(東三省)에서 독립 운동에 매진 중이던 지사는 동삼(東三)으로 개명했다. 1920년 순국한 그의 동생 김찬식도 그때 동만(東滿)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형제는 만주 동삼성에 뼈를 묻자는 각오를 새 이름으로 나타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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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내앞마을은 독립유공자를 20명 이상 배출했다. 나라가 망한 뒤 만주로 망명한 마을 주민이 많아서 1910년대에 이미 150명 이상 압록강을 넘었다. 당연히 내앞마을에는 김동삼 지사 생가터 말고도 꼭 찾아볼 독립운동가 관련 유적이 또 있다. '백하구려'이다.

'백하구려(白下舊廬)'는 백하(白下) 김대락(1845-1915)의 옛집[舊廬]이라는 뜻이다. 김대락 지사의 호 '백하'도 독립의 염원을 담고 있다. 백하는 백두산 아래를 가리킨다. 김대락은 이상룡(1858-1932)의 처남으로, 그의 여동생 김우락이 이상룡의 부인이었다. 백하구려 건물은 김대락, 이상룡, 김동삼 등이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협동학교 교실로 사용되었다.

중등과정의 3년제 협동학교(協東學校)는 유인식·김병후·하중환·김동삼 등이 1907년에 설립했다. 협동학교는 신민회(新民會)에서 교사를 파견해 준 데서 짐작되듯 안동 지역에 혁신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구국 운동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유림의 반대와 저항은 극렬 했다.

유림은 신식 교육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규정했다. 사문난적은 성리학의 가르침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일컫는 죄명이다. 협동학교도 1909년 예천의병의 공격을 받아 교사와 학생 등 3명이 피살당 하기까지 했다. 그 협동학교가 바로 김동삼 지사 독립운동의 첫 출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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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9월 18일 일본은 만주를 무단 점령하기 위해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김동삼 지사는 새로운 항일 활동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하얼빈에 잠입했다가 일제에 피체 되고 말았다. 결국 지사는 1937년 4월 13일 서울 마포 경성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했다. 그가 남긴 유언이 안동댐 월영공원 빗돌 '일송 김동삼 선생 어록비'에 새겨져 있다.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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