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이 일천 권이 되다

2009년 초봄이었다. 내 책을 여러 권 펴내준 눈빛출판사 대표가 강원 안흥 산골 내 집으로 오셨다. 그와 나는 지연, 학연, 혈연 등 아무런 세속의 연고가 없다. 단지 출판인과 작가로 만나 현재까지 19권의 책을 펴낸 바 있다.
그에게 방문 용건을 묻자, 2009년 10. 26.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일인 바, 이날에 맞춰 안중근 평전을 내고 싶다고 하면서 승용차에 참고 도서를 잔뜩 싣고 왔다. 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부인과 함께 안흥 산골로 찾아오셨는데, 그때마다 흰 봉투에 그간의 인세를 정산하여 내 손에 쥐여주고 갔다. 그리하여 나는 미안한 마음에 온라인으로 보내라고 하면서 계좌 번호를 일러주곤 했다. 하지만 그는 불경스럽다면서 계속 19세기 식으로 인세를 봉투에 담아 직접 전했다.
그가 서재에 떨어뜨린 참고도서를 보면서 "안 의사에 관한 공부가 매우 부족합니다"라고 사양해도 그는 계속 잘 부탁한다는 말만 한 뒤 훌쩍 떠났다. 며칠 고심 끝에 서울 남산 안중근 기념관으로 가서 당시 김호일 관장님을 뵙고 그런 사정을 토로했다. 마침 여름방학 중, 전국 각 대학생을 선발하여 하얼빈과 뤼순 감옥으로 안중근 유적지를 답사하러 갈 예정이라고 하면서 나를 특별회원으로 참여시켜 주겠단다.
나는 그때까지 다소 시간 여유가 있어 참고 도서를 보면서 지내는데 후딱 7월 초순으로 접어들었다. 그러자 남산기념관에서 자세한 출발 일정과 회비 납부를 안내하기에 잘 알았다고 대답을 한 뒤, 하룻밤을 자고 나자 갑자기 왼쪽 가슴이 바늘에 찔린 듯 통증이 무척 심했다. 깜짝 놀라 가까운 횡성의 한 병원으로 가자 서울의 큰 대학 병원에 가 보라면서 의사 의견서를 써 주었다.
그리하여 서울의 한 대학 병원으로 가서 일주일 정도 통원 치료를 하자 통증이 씻은 듯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남산 안중근 기념관으로 연락을 하자 이미 일행은 하얼빈으로 출발하였단다. 나는 그제야 이는 하늘이 돕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료 도서의 책장을 넘기는데, 문득 "역사 답사는 가장 낮은 자세로 가능한 당시 교통기관으로 하는 게 맞다"라는 그런 생각이 스치면서 그 대안으로 10. 26일 의거일에 출발한 뒤, 책은 안중근 100주년 순국 일인 2010년 3월 26일에 책을 발행키로 작정을 하고 이 대표에게 양해를 구하자 그도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리하여 2009년 10월 26일 의거 100주년 일에 출발하여 연해주 크라스키노(엔 치하) -> 블라디보스토크 -> 우수리스크-> 쑤이펀허 -> 하얼빈 -> 창춘 -> 선양 -> 다롄 -> 뤼순까지의 그 긴 여정을 그해 11월 3일까지 답사하고 돌아왔다. 그런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 원고를 2010년 1월 하순에 출판사로 넘겼다.
그러자 출판사에서도 밤낮을 기리지 않고 제작하여 마침내 안중근 의사 순국일 직전에 <영웅 안중근>이 발행 됐다. 출판사에서는 발행 즉시 각 언론사로 배본 했으나 너무 촉박한 탓인지, 아니면 진품을 몰라본 탓인지, 내 작품이 시원치 않았는지 주요 일간지에 신간 소개가 되지 않았다. 그날 밤 YTN 자정 뉴스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시청하는데, 낯익은 진행자가 마침내 내 책 <영웅 안중근>을 비춰 주면서 소개를 하는데, 화면 밑에 <속보!>가 떴다. '오늘 서해안에서 천안함이 피격 됐다'는 뉴스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영웅은 시대를 만들지만 보통 사람은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 그 말을 실감했다. 그날 이후 약 6개월 동안 '천안함 사건' 보도가 블랙홀로 모든 걸 삼켰다. 그런 와중에 1981학년도에 입학한 이대부고 고순영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체 내용보기 ...
이 뉴스, 어떠셨어요?
탭 한 번으로 반응 · 로그인 불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