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설에 죽어나간 후박나무 200그루, 나무의사가 살렸다
[제주=뉴시스]오영재 기자 = 지난해 제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후박나무 훼손 사건과 관련해 1년이 지난 현재 나무의사의 봉사 덕분에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14일 찾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소재 산림보호구역. 지난해 5월 이 곳에서 400여그루의 후박나무가 박피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주는 물론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산림 훼손 사례다. 피해액만 27억원에 달했다.
죽어가던 후박나무를 1년 동안 갖은 정성으로 치료해 살려낸 이가 있다. 수목나무병원장인 박치관 한국나무의사협회 제주지회장이다. 그의 노력으로 고사 위기에 처했던 100년 수령의 후박나무 등 200여그루가 빗물을 머금고, 햇살을 품으며 푸른 잎과 가지를 뻗고 자라고 있다.
◇'몸에 좋다'면 뭐든…낭설이 부른 대규모 박피
과거 중국 등에서 후박나무 껍질을 달여 마시면 몸에 좋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후박나무와 국내 자생하는 후박나무는 전혀 다른 종이다. 단순히 껍질이 두텁다 하여 '두터울 후(厚)' 자에 '나무껍질 박(朴)' 자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국내 후박나무 껍질은 건강에 효과가 없다.
50대 조경업자 A씨는 근거없는 낭설에 사로잡혀 인부들을 데리고 한 달 가까이 대규모 박피 행위를 저질렀다. 껍질만 도려낸 채 후박나무를 그대로 방치했고, 절반 가량이 결국 말라 죽었다. A씨는 훔친 껍질을 한약재 등으로 둔갑시켜 판매해 수 천만원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최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전문가들 '못 살린다' 했지만…"해볼만 하다" 판단
사건은 마무리됐으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껍질만 벗겨진 채 방치된 후박나무 군락은 메마르고 엉성한 모습으로 고사할 처지였다. 이에 서귀포시 산림방제팀은 나무의사인 박치관 지회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환경단체와 서귀포시, 조경 전문가 등이 회의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고 전해진다. 통상 껍질이 벗겨진 나무는 수분이 빠져나가기 시작해 서서히 말라가고 영양분 이동도 원활치 않아 고사하는 건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100% 고사할 것'이라는 전문가 예측을 깨고 박 지회장은 나무 치료를 시도했다. 제주 산간 지역 특유의 기후 특성과 습기가 많은 후박나무 군락지 지형적 특징, 후박나무의 강한 생존력 등에 착안해 가능성을 내다 본 것이다.
그는 "나무를 무작정 베기보다 어쨌든 사람 살리는 것처럼 한 번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시도했다"며 "400여그루 중 절반 가량 살리는 게 목표였다. 되든 안 되든 이런 선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드레싱하고, 주사 넣고, 붕대 감고…나무도 사람처럼 치료
국가전문자격의 하나인 나무 의사는 해충과 바이러스 등에 의해 아픈 나무들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목 진료·치료 권한이 있다. 박 지회장은 이번 후박나무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나무가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숲 속에서 햇빛을 덜 받는 후박나무들을 추려 건조를 방지해주는 황토를 표면에 도포했다. 황토는 직사광선을 막고 습기를 보존해 주는 천연 성분이기 때문이다. 이후 영양제를 주사하고 주기적으로 수목 보호제를 발라 소독을 진행했다.
해충이나 유해균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해 일부 살아있는 조직이 성장할 때까지 보살펴 주는 것이다. 1년 간의 치료 끝에 200여 그루에서 새 가지가 돋아난 것이 관찰됐다. 잎사귀도 본래의 초록 잎을 띠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과 양분이 뿌리부터 잎까지 이동하고 있다는 징후다.
◇대규모 산림 훼손, 수목진료로 복구…"무작정 베는 게 능사 아냐"
후박나무 200여그루가 전기톱에 베이지 않고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난 1년 간 후박나무 치료 과정에서 박 지회장은 돈 한 푼 받지 않았다. 대민봉사의 일환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다.
박 지회장은 "과거에는 나무에 대한 전문 진료 체계가 없던 탓에 썩기 시작하면 무작정 베어내고 묘목을 새로 식재했다. 대부분의 산림 복구가 이런 형식이지만 능사가 아니다"며 "이제는 치료를 시도해 '소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무도 사람처럼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제주도는 외래 해충이나 곰팡이균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어서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며 "특히 농업이 주를 이루는 지역인데, 나무의사는 2명에 그친다. 중국에서 감귤나무를 죽인 황룡병 등에 대비도 필요한 것 같다. 유관기관과 전문가들이 모여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oyj4343@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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