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대통령 모신 경호실장... 그의 '발상의 전화'이 가져온 의미 있는 변화

AI 통합 요약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0일 이탈리아 마타렐라 대통령의 초청으로 로마에 국빈방문했다. 방문 중 대통령은 미국과의 경제협력 강화와 안보 분야의 자주국방을 강조하는 국익 중심의 새로운 외교정책을 제시했으며, 한-이탈리아 양자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유럽연합과의 첨단기술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진보 성향: 한-EU 공동성명에 포함된 북한인권 개선 요구를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노선과의 괴리로 지적하며, 유럽의 분열된 입장 속에서 유연한 외교를 통해 모든 진영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강조했다.
보수 성향: 기존의 안미경중 외교노선으로부터의 명백한 전환으로서 미국과의 경제협력 강화 및 안보 자주화를 추구하는 국익 기반의 전략적 외교 재편으로 평가했다.
1998년 2월 25일, 청와대 정문이 열리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오랜 정치적 시련을 견뎌낸 이른바 '인동초의 삶'은 그 자체로 시대 전환의 상징이 되었고, 사회 전반에는 정의로운 국가에 대한 기대가 조용히 확산되었다. 과거 권위주의 시기 경호 조직이 정치적 환경 속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아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시기는 경호 체계가 보다 공공성과 책임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준 전환점으로도 해석된다. 경호 조직이 국가 권력의 연장선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의정부 출범과 함께 임명된 안주섭 경호실장은 비교적 절제된 표현으로 조직 운영의 원칙을 제시했으나, 그 내용에는 시대적 과제가 담겨 있었다. '국가원수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되, 이를 둘러싼 조직 문화와 역할을 보다 제도적이고 균형 있게 재정립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는 특정 인물이나 권력에 대한 개인적 충성의 개념을 넘어, 헌법적 책무와 공적 책임에 기반한 직무 수행으로 경호 조직의 성격을 전환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경호 조직이 민주적 통제와 전문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흐름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경호 본연의 임무에 집중한다"
육사 24기 출신으로 육군대학 총장을 맡고 있던 육군 소장 안주섭은 예상치 못한 인사 통보를 받게 된다. 야전 지휘 경험을 중심으로 경력을 쌓아온 그는, 중장 진급에서 누락된 이후 군 생활을 정리하고 학문과 교육에 전념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취임을 앞둔 시점에서 김중권 비서실장 내정자로부터 청와대 경호실장 발탁 의사를 전달받으며 상황은 급변했다. 훗날 그는 당시를 두고 "머리가 하얘졌다"고 회고했을 만큼, 해당 제안은 개인의 진로를 넘어서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받아들여졌다. 정치권과의 직접적인 인연이 거의 없었던 점 또한 이러한 당혹감을 더한 요인으로 보인다.
이후 중장으로 진급해 전역한 그는 기자들 앞에서 향후 직무 수행 방향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안전 확보라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겠다는 점, 경호 업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만큼 신중히 업무를 파악하겠다는 점, 그리고 정보 수집이나 정치적 사안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발언은 개인적 포부를 넘어 조직 운영의 기본 원칙을 외부에 천명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재임기간 동안 경호 조직이 대외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도록 운영되었다는 평가는, 이러한 기조가 일정 부분 실무에 반영된 결과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권위주의 시기 일부 경호 조직이 정보 기능과 결합되며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는 이후 제도 개선 논의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경호 조직이 권력 구조의 중심에 설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계로 이어졌고, 김대중 대통령 역시 유사한 인식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야권 출신으로서 처음으로 정권 교체를 이룬 상황에서, 경호 조직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는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통치 철학과 직결된 사안이었다. 안주섭은 이러한 시대적 맥락을 인식한 가운데, 경호조직이 정치적 기능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군인의 언어로 명확히 표현했으며, 이는 "경호 본연의 임무에 집중한다"는 기조로 구체화되었다.
당시 경호실이 지닌 위상과 권한은 조직의 법적 지위와 맞물려 형성된 측면이 있었고, 이에 대한 조정 필요성도 제기되어 왔다. 대통령 경호라는 본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조직의 위계를 합리적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는 제도적 정비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안주섭은 경호 조직이 외부에 과도하게 드러나기보다 실무 중심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며, 조직의 역할을 보다 전문화된 경호 영역으로 한정하려 했다. 이는 경호 조직이 정책이나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아니라, 헌법상 책무 수행을 지원하는 기능적 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주섭은 그동안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채 관행에 의존해 운영되던 경호 업무를 제도와 문서 중심으로 재정비하고자 했다. "경호실의 모든 규정과 교범을 가져오라"는 그의 지시는 단순한 자료 점검을 넘어, 조직 운영 전반을 체계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과거의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규정과 절차에 기반한 경호 체계를 확립하려는 시도로, 경호 조직을 보다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려는 접근이었다. 특히 경호 업무의 범위와 권한을 명문화함으로써, 조직 내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려는 방향성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비공식적 관행이나 암묵적 기준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 제도적 기준에 따른 운영을 지향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현장 경호 인력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즉각적으로 체감되기 어려웠을 수 있으나, 정권 교체와 함께 조직 전반에 요구된 변화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경호 조직이 개인적 관계나 비공식적 판단이 아니라, 규정과 절차에 근거해 기능하는 전문 조직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일련의 전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재편은 경호 조직의 권한 행사에 대한 예측 가능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규정과 교범의 중요성을 간파한 이유
뿌리 깊은 관행과 방식을 바꾸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조직의 힘이 관행에서 나오던 시절, 규정은 언제나 뒤따라가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수십 년 동안 "원래 그렇게 처리했다"는 말로 정당화된 많은 관행이 실제 규정에는 없거나, 모호한 표현 뒤에 멋대로 해석하는 방식에 익숙해 있었다. 그렇게 암묵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던 상황에서 문서로 만들어진 형식지를 도출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교범 작성에 참여한 한 경호관은 "우리는 군 출신 실장이 들어오면 군대식 통제만 강화하려고 오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규정부터 다시 쓰자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안주섭이 규정과 교범의 중요성을 간파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말로 전해지는 충성은 언제든 상황과 사람에 따라 변형되고, 결국 가장 강한 사람의 편에 서게 마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차지철의 충성이 박정희의 등에 총탄을 부르는 방식으로 변질된 것도, 바로 그 '말로만 존재하는 충성'이 권력 욕망과 결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충성의 내용과 방식을 규정과 교범에 박아 넣으려 했던 것이다. "대통령의 신변 보호만 한다"는 말은 경호실의 임무를 법과 문서로 한정한다는 의미였다.
"당시 현장 부서에서 역량을 인정받으며 신망이 높았던 간부와 직원들이 규정과 교범을 만드는 부서로 배치됐다. 그들은 경호실이 전문 경호기관으로 바로 서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교육 관련 부서에 배치되어 교범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전직 경호관의 말이다. 경호교범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었다. 충성은 손바닥이나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교범에 따른 행동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혁명적 선언이었다. 더 이상 특정 인간에게 바치는 입에 발린 맹세가 아니라 헌법과 제도에 따른 직접적 양심을 머리로 익히고 가슴에 새겨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그렇다고 규정과 교범만으로 경호실이 권력의 그림자에서 전문 경호기관으로 발돋움할 수는 없었다. 충성이 문서 속에 새겨진 침묵의 맹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 요원들의 숙원을 해소해야 했다. 창설 이래 경호실 직원들은 별정직의 불안한 늪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 별정직 신분은 위태로웠다. 언제든 인사권자가 마음만 먹으면 갈아치울 수가 있었다. 경호관들의 신분 안정화 요구는 끊이지 않았지만 메아리 없는 낮은 목소리였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경호실장으로선 신분 불안정을 무기로 삼을 수 있었다. 언제든 잘려 나갈 수 있는 칼날 위의 충성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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