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촌에 모인 1250통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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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서명지 귀퉁이에 남은 메모였다.
2025년 겨울의 탄핵 광장이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삐걱거리는 무릎을 이끌고 매주 광화문에 나와 낡은 박스집을 세웠다.
"동자동 쪽방촌에 공공주택 지읍시다!"
2021년 정부가 약속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여전히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볼펜마저 얼 만큼 추운 날씨였다. 시민들은 서명지에 이름을 꾹꾹 눌러적으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남겼다.
"저도 노숙을 한 경험이 있어요.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어릴 적 반지하에 살았어요. 공공임대주택이 꼭 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만여 명의 서명이 모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도 사업의 첫 단계인 지구지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다. 공공주택사업 발표 당시 1300여 명이던 동자동 주민은 800여 명으로 줄었다. 백오십여 명의 주민이 좁고 어두운 쪽방에서 생을 마쳤다. '공공임대주택에 하루라도 살다 가는 것이 소원'이라던 주민들의 바람은 여전히 미뤄지고 있다. 서명지의 짧은 칸에 남겨진 이야기들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다시 이야기를 모으기로 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을 지지하는 편지를 보내주세요.'
목표는 1250통. 정부가 동자동에 짓겠다고 약속한 공공임대주택 숫자였다. 온라인으로 모인 편지들은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집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재개발을 앞둔 세입자, 기숙사에 사는 대학원생, 동자동 주민을 돌봤던 요양보호사. 이 글은 동자동 공공주택을 지지하는 편지를 보내온 시민 세 명의 이야기다.
21세기 서울에서 다시 만난 1970년대
은총씨는 요양보호사였다. 몇 해 전 동자동 쪽방촌의 한 어르신을 돌보게 되면서 처음 동자동을 찾았다.
"아파트는 실내 생활이 기본적으로 다 되잖아요. 그런데 쪽방촌은 방 한칸이 전부예요. 신발은 여러사람이 쓰는 복도에 놓고, 그 와중에 중요한 신발은 또 방 한쪽 구석에 놔야 하고. 그 옆에는 수저랑 밥통 놔야 하고. 그래도 저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해야죠."
주로 아파트에서 어르신을 돌봤던 은총님은 동자동에 들어선 순간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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