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아저씨가 페미니스트가 되고 조직 문화와 공동체를 말하기까지

그때는 내가 단체를 그만두게 되고 리더십이니 조직 문화니 하는 것들의 교육이며, 워크샵, 코칭, 모임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던 때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조직 내에서 겪었던 일들이 너무 기가 막혀서, 잘못된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평등하고 안전한 활동공간 만들기> 자조모임(현 평등하고 안전한 활동공간을 위한 네트워크 <우리가잇다>)에 참여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모임 당일, 홍대 근처의 꽤 큰 스터디룸은 참여자들로 꽉 차 있었다. 모임을 주최한 활동가도 이렇게 많은 사람 들이 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 참여자 대부분은 청년이거나 여성이었다. 각자 활동의 영역은 달랐지만 비슷한 경험들을 했다. 딱 한 사람을 빼고.
검정 일색의 옷차림. 무거워 보이는 가방. 정인 님은 보통의 중년 남성 활동가처럼 보였다. 그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었고, 노동운동을 했고, 관리자였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은 여기 왜 왔을까 생각했다.
<우리가잇다>는 몇 차례 모임을 더 가졌다. 모임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가잇다>에도 새로 합류하는 멤버도 빠지는 멤버도 생겼다. 드문드문 참석하는 멤버들도 있었다. 정작 그는 멀리서 오면서도 모임에 거의 빠진 적이 없었다. 그는 평소에는 본인은 활동가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고 말을 아끼는 편이었지만, 모임이나 다른 멤버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면 적극 나섰다. 나는 약간 부끄러워졌다.
모임을 지속하며 그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됐다. 그는 운동권이었고, 노동운동을 했고, 관리자였다. 하지만 동시에 돌봄을 경험했고, 성폭력 피해자지원 활동을 했고, 페미니즘과 조직 문화와 공동체의 책임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별로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내력들이 궁금해졌다. 아래는 <우리가잇다> 활동가 정인을 지난 6월 인터뷰 한 내용이다.
- 안녕하세요, 정인 님. 먼저 저를 믿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우리가잇다>에서 만났죠. 정인 님과 <우리가잇다>를 소개한다면요.
"이게 첫 질문부터 너무 어려운데(웃음) 저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1990년대 말부터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했어요. 노동운동은 한라하청노조 이후로 주로 대공장 사내하청운동에 관심을 갖고 노조 건설 사업을 지원했었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성폭력 사건 지원활동도 해왔어요.
몇 년 전에 오래 했던 단체를 해산하고, 지역에 아는 활동가들이랑 북카페 만드는 사업에 발을 걸쳤다가 코를 꿰서 요즘은 그 연장으로 책읽기모임이랑 소식지 내는 일을 하고 있긴 한데, 사실 활동가로서는 퇴직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이 들어서 괜히 나대지 말고 시간 나면 이런저런 집회 가서 조용히 머릿수나 하나 보태주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웃음)
사실 저는 <우리가잇다>에 가기가 뭣했어요. 저는 운동의 피해자라고 보기는 좀 그런 게 사실 일찍 관리자가 돼서 관리자 역할을 오래 했었어요. 물론 크게 봐서 운동문화의 피해는 저도 입었고, 그런 차원에서는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웃음). <우리가잇다> 만들 때, 같이 하시는 분들 중에 성폭력 사건 지원활동 같이 하셨던 분들이 불러서 왔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운동 진영에서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 늘어나고 있거든요. 사실 반성폭력 운동이 조직 문화를 바꾸는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또 모든 게 다 성폭력 피해로 환원되지 않는 것도 있잖아요. 보통 조직 내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조직 문화가 위계적인 곳에서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축소하면서 같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저도 그런 사건들을 몇 개를 지원했었고요.
반성폭력 운동이 결국 조직문화의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우리가잇다>가 제기하는, 잘못된 운동 문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바꾸자는 의의에 공감해서 계속 함께하게 된 것 같아요."
- <우리가잇다>는 아직 자조모임 형태지만,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운동 진영 내의 조직문화 변화와 관련된 것들을 많이 모색을 하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 정인 님은 <우리가잇다>의 최연장자 멤버인데요. 아무래도 <우리가잇다>에는 위계폭력에 취약한 청년, 여성 활동가들의 참여가 많았는데, 정인 님도 원래부터 조직문화에 관심이 많았나요?
"예전에는 불합리하다 생각만 했지 바꿀 생각이나 이런 건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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