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지나간 자리까지 지킨다... 천수만 '새 박사' 사연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천수만의 새들을 멍하니 봅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고민하고 열받는 일이 정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 14일, 충남 서산 천수만 인근 서산버드랜드에서 '새 박사'로 통하는 한성우 주무관을 만났다. 그는 서산버드랜드에서 천수만 철새도래지 생태환경 조성·유지관리, 생태학습장 운영, 휴경농지 활용사업, 천수만 탐조대회 운영 등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조류박람회와 국제행사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한 주무관에게 새는 행정 업무의 대상이기 전에 삶의 방향을 바꾼 존재였다. 대학 시절,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다는 말에 조류학 연구실에서 공부를 시작한 그는 낙동강 하구에서 수천 마리 민물도요가 날아오르는 장면을 봤다. 이어 서산 천수만에서 가창오리의 군무를 마주했다. 그때부터 새는 그에게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었다.
"새는 저에게 꿈과 현실입니다."
그는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언젠가 지금 맡은 일을 내려놓게 되더라도, 망원경을 들고 다시 천수만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장소에서 만나는 수많은 철새
한 주무관은 천수만의 가장 큰 특징으로 '다양성'을 꼽았다. 순천만 하면 흑두루미, 금강 하면 가창오리를 떠올리듯 특정 지역이 특정 철새로 대표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천수만은 다르다고 했다.
"10만 개체가 넘는 기러기류, 전 세계 거의 모든 개체가 방문하는 흑두루미, 국제적 보호종인 황새를 비롯해 독수리,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등 다양한 철새를 한 장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한 천수만의 계절은 새들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봄이면 흑두루미가 북상하며 천수만을 지나고, 여름이면 인근 산에서 여름철새들의 소리가 들린다. 가을에는 기러기들이 수확이 끝난 논을 찾아들고, 겨울이면 오리와 기러기가 천수만을 가득 채운다.
많은 새 가운데 그가 유독 마음을 주는 새는 황새다. 서산버드랜드 안에서 번식하고 있는 황새로, 그는 "국내 1호 다문화가족을 이룬 황새"라고 표현했다.
2022년 충남 예산에서 야생 방사를 목적으로 들여온 황새 한 쌍이 삵의 공격으로 모두 폐사한 일이 있었다. 사업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던 상황에서, 서산버드랜드 주변을 두고 경쟁하던 야생 수컷과 방사 암컷이 짝을 이뤘다. 두 황새는 둥지를 만들었고, 4년 연속 번식에 성공했다.
"실패로 종결될 뻔한 사업이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종이다 보니 볼 때마다 예쁩니다."
멸종위기종을 지키는 일은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실패와 우연, 기다림과 회복이 겹쳐 있다. 한 주무관에게 황새는 그 시간을 함께 견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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