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지운 독립운동가들... 아이들 질문에 대답 못한 이유

정확히 천 리 길이었다. 첫째 날, 몇 군데 답사지를 경유해 이육사 문학관 근처의 숙소에 도착해 보니, 렌터카 계기판에 맞춰둔 0km가 400km를 가리켰다. 고속도로로 이곳 광주에서 서울까지가 채 300km가 안 되는 거리이니, 이번 동아리 답사 여행은 말 그대로 강행군이었다.
지난 주말(11~12일) 이틀 일정으로 현대사를 함께 공부하는 역사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경북 안동 일대를 답사했다.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그들의 생가와 묘소 등의 발자취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알아보니 그들의 고향은 십중팔구 대구 아니면 경상북도였다.
직접 운전까지 해가며 굳이 이 먼 경북 북부 지역을 찾은 건, 교과서의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두 축으로 전개되었다'. 독립운동의 방식을 달리했던 두 진영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 서로 대립하고 때론 단결을 모색하면서 조국의 해방을 꿈꾸었다.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한 독립운동에는 어떤 게 있나요?"
한 아이가 던진 이 질문에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기실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하지 않은 독립운동에 어떤 게 있는지' 묻는 게 더 적확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3.1 운동 이후 1920~1930년대 독립운동의 팔 할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몫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광풍이 전 세계에 몰아치던 당시 유라시아 대륙의 변방인 조선도 사회주의의 물결을 피할 수 없었다. 1921년에 중국 공산당이 수립됐고, 1925년 조선 공산당도 깃발을 세웠다. 노파심에 한마디 얹자면, 이는 지금 북한 김정은의 노동당과는 궤를 달리하는 정당이다.
당시 사회주의는 '신사상'으로 불리며 식민지 지식인들을 매혹했다. 독립 투쟁을 위한 이념적 도구로 빠르게 확산했고,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은 연대하며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에 맞서 싸웠다. 1925년 제정된 일제의 치안유지법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한 악법이었다. 치안유지법은 해방 후 여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의 모태가 됐다.
당장 1923년 경남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운동부터 사회주의적 평등사상이 스며들어 있다. 신분 차별에 맞선 백정들의 저항은 끝내 실패하고 말았지만, 신분 해방을 염원하는 민심의 도도한 물줄기는 막을 수 없었다. 조선 공산당의 2대 비서인 강달영이 진주 출신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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