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유값 다시 갤런당 5달러…트럭·농장 거쳐 식탁 물가 압박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미국 경유 소매가격이 다시 갤런당 5달러를 넘어섰다. 러시아의 수출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공급이 줄어든 데다 미국산 경유 수출이 늘면서 미국 내 수급도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화물 운송비와 농기계 가동비, 냉장 유통비가 함께 올라 미국의 식품·생활물가를 다시 밀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켓워치는 18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유 소매가격이 17일 평균 갤런당 5달러를 웃돌았다고 보도했다. 한 달여 만에 다시 5달러 선을 넘어섰으며, 지난해 7월보다는 1.30달러 이상 높다.
미국의 경유 가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2022년 6월 갤런당 5.82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유는 휘발유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대형 화물차와 스쿨버스, 농기계 등에 주로 쓰인다. 과일과 채소 등 농산물을 산지에서 식료품점과 식당까지 신선하게 운반하는 냉장차와 냉장 설비를 가동하는 데도 상당한 에너지가 든다.
최근 경유값은 미국·이란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각각 발생한 공급 차질의 영향을 동시에 받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중동산 원유 수송에 차질이 빚어진 가운데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으로 러시아산 경유 공급까지 급감했다.
러시아는 자국 내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 7월 말까지 경유 수출을 금지했다. 러시아는 튀르키예와 브라질 등 중남미·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경유를 공급해 왔다.
러시아의 하루 경유 수출량은 지난해 약 80만 배럴에 달했지만 이달 초에는 약 23만4000배럴로 줄었다. 우크라이나군의 잇따른 정유시설 공격으로 생산과 수출 능력이 크게 떨어진 결과다.
러시아산 경유를 구하기 어려워진 국가들은 미국산으로 부족분을 메우고 있다. 미국이 세계 경유시장의 부족분을 메우는 핵심 공급국으로 떠오르면서 수출이 늘었고, 미국 내 수급도 빠듯해져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두바이 에너지 컨설팅업체 카마르에너지의 로빈 밀스 최고경영자(CEO)는 경유 공급난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이 러시아의 정유 능력을 얼마나 오랫동안 제약하느냐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복구 작업이 잇따른 공격으로 발생하는 추가 피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경유값을 끌어올렸다면, 현재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에너지시장을 흔들고 있다. 미군은 17일 이란 목표물을 7일 연속 포격했다고 밝혔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양국의 임시 평화 합의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며 “끝났다”고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경유를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중동산 원유의 공급도 줄고 있다. 아시아 정유사들은 경유 생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동산 중질·고유황 원유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미국산 경질·저유황 원유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산 원유를 정제하면 중동산 원유를 사용할 때보다 휘발유는 많이 나오고 경유는 상대적으로 적게 생산된다. 정유공장에 투입할 원유 자체가 줄어든 것도 경유 공급을 감소시키는 요인이다.
경유 생산을 줄인 요인은 원유 부족만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정유사들은 올봄 항공유 부족 우려에 대응해 항공유 생산 비중을 높였다. 같은 양의 원유로 항공유를 더 생산하면서 경유와 휘발유 생산 비중은 낮아졌다.
미국은 최근 휘발유와 경유, 프로판 등 정제유를 사상 최대 수준으로 수출하고 있다. 해외 수출의 채산성이 내수 판매보다 높은 한 정유업체들의 수출 유인이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휘발유값은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곧바로 체감하지만, 경유값은 화물 운송비와 생산비를 거쳐 상품 가격에 간접적으로 반영된다. 미국에서 식료품을 비롯한 상품의 상당 부분이 경유 화물차로 운송되는 만큼 경유값이 오르면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도 커진다.
농업 부문의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연료와 비료, 농약 등 각종 화학제품은 농가 운영비의 약 15%를 차지한다. 산지에서 판매처까지 저온을 유지하는 냉장 유통망의 비용도 함께 오른다.
캘리포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 농업경영학과의 리키 볼피 교수는 토마토와 상추 같은 신선 채소는 생산·운송비 상승이 소매가격에 거의 즉각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옥수수와 밀, 콩 등 대규모 곡물은 수확과 가공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비용 상승분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린다.
에너지와 비료 가격 상승분은 올해 가을 수확기부터 내년 초까지 곡물 가격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곡물값 상승은 사료비와 식품 원료비를 거쳐 빵과 탄산음료, 소고기 가격에는 2027년에야 본격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대규모 농가와 주요 농업 생산업체는 공급업체와 가격을 협상하거나 구매업체와 비용을 분담할 여지가 있다. 반면 협상력이 약한 중소 가족농은 늘어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고 볼피 교수는 지적했다.
미국의 식품물가 상승률은 관세와 세계 주요 농업지대의 악천후 등으로 이미 예년 평균을 웃돌고 있다. 볼피 교수는 올 하반기부터 에너지와 비료 비용 상승분이 농산물 가격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면 식품물가 상승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unghp@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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