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 '왕릉 산책'에서 생긴 퇴직 부부의 버킷리스트

지난 5일,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애초에 계획된 여정은 아니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열린 친척 결혼식 덕분에 오랜만에 사촌들을 만나 반가운 정을 나눈 참이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기 아쉬워 점심 식사 자리에서 미적거리고 있으니, 남편이 휴대폰 화면을 슬쩍 내밀었다.
"여기 들렀다 갈까요?"
화면 속 장소는 선릉과 정릉(선정릉). 길찾기 앱이 보여주는 도보 거리는 약 25분이었다. 후텁지근한 무더위에 비까지 오락가락하는 날씨, 굳이 '왕의 무덤'을 찾아가야 하나 몇 초간 망설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언제 또 나오랴 싶었고, 이른 귀가도 아쉬웠다.
"그래요, 가봐요."
우거진 숲길을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도심 속 25분은 생각보다 멀었다. 선정릉 돌담길을 끼고 샛문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돌아서야 겨우 매표소에 다다랐다. 성인 관람료 1000원을 내고 입장했다.
세 왕비를 두고 홀로 누운 중종
이곳은 조선 9대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의 능인 '선릉', 그리고 11대 중종의 능인 '정릉'이 함께 있는 곳이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오른쪽, 즉 중종의 정릉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른쪽으로 돌아 조금 걸어 들어가니 정릉이 보였다. 신성한 공간임을 알리는 홍살문을 지나 왕이 걷는 '어로'를 따라 걸었다.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의 열린 문 사이로 저 멀리 봉분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경관 속에 물 흐르듯 녹아든 조경 예술의 극치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았다. 관람객의 접근이 제한되어 멀리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줌인해 바라봐야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서 그 공간이 더 엄숙하게 다가왔다.
역사 속 이야기를 들여다보니 삶의 덧없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본래 중종의 정릉은 고양 서삼릉에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와 함께 있었으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가 사후에 중종과 곁에 묻히고 싶어 이곳으로 능을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리가 비만 오면 침수되는 탓에 결국 문정왕후는 노원구 태릉에 홀로 묻히게 되었다.
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까지 세 명의 왕비를 두었던 중종은 결국 이 넓은 땅에 홀로 외로이 묻히게 된 셈이다. 사람 사는 일도 뜻대로 되지 않지만, 죽은 뒤의 일 또한 참으로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매사 그리 너무 애쓸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굽어 자란 소나무가 아름다운 이유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숲은 더욱 짙고 푸른 빛을 발했다. 특히 능 주변의 소나무들은 붉은 기둥을 드러낸 채 눈부신 휘어짐을 자랑하고 있었다. 단 한 그루도 올곧게 수직으로 뻗은 것이 없었다. 모두 제각각의 곡선으로 등을 구부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마음을 더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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