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로 평양에서 동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게 나의 마지막 소원일세"

2026년 6월 10일은 고 이희호 여사 서거 7주기 추모식 날이다. 김대중 이희호 추모사업회 고문으로서 참석하는 게 당연한 도리이리라. 서울 동작구 동작동 현충원에서 오전 10시에 열리기에 그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원주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하기에 알람을 6시로 맞춰뒀지만, 예사 날처럼 새벽 4시에 깼다. 볼일을 보고 다시 참을 청하려는데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곧장 일어나 책장을 뒤적이다가 간단히 아침밥을 챙겨 먹고 오전 7시 45분 고속버스를 탔다. 나는 서울 갈 때면 꼭 열차를 탔지만, 꼭 맞는 열차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동작동이 가깝기에 버스를 탔다.
첫번째 만남
1시간 남짓 서울로 가면서 고인과의 이런저런 추억을 되새겼다. 나는 고인과 학부모와 교사의 인연으로 고인 생전에 꼭 세 번 만났다. 그 첫 번 만남은 1980년 9월 18일로 기억이 된다. 당시 김대중 씨는 그 전날 '내란 음모 사건' 공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나는 이대부고 국어 교사로 그 다음 날, 오전 3교시 교장실 바로 옆 교실인 고 2-1반에서 국어 수업을 마치고 교장실 앞으로 지나는데 문이 뾰족 열리면서 김연옥 교장 선생님과 한 부인이 작별인사를 나누다가 나와 마주쳤다. 신문이나 TV 화면으로 여러 차례 봐온 이희호 여사였다. 그 순간 그분은 나에게 눈 인사하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친 후 얼굴을 가리면서 얼른 현관을 거쳐 교문 쪽으로 종종 걸음으로 사라지셨다. 문을 열고 있던 교장 선생님이 나에게 말씀했다.
"박 선생님, 다음 시간 수업이 없으시면 잠깐 내 방으로 들어오십시오,"
마침 수업이 비기에 교장실로 들어가 소피에서 마주 앉았다.
"누구신 줄 아시지요?"
"네. 김대중 씨 부인 이희호 여사가 아닙니까?"
"저와는 대학 시절(서울사대 교육학과) 같은 과 친구입니다."
"네. 그러세요."
"오늘 아침 신문 보셨지요?"
"네. 김대중 씨가 육군 계엄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아마 그 선고가 내리자 밤새 못 주무셨나 봅니다. 오늘 아침 문득 남은 한 남자라도 구해야겠다고 아들 학교로 찾아와 저를 붙잡고 한참 하소연을 하시다가 갔습니다."
"아, 네."
"박 선생님, 그 아드님 잘 아시죠?"
"그럼요."
"박 선생님이 좀 조용한 곳으로 불러 용기 잃지 말라고 등을 두들겨 주십시오."
"교장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역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말 없는 눈빛으로 격려하는 게 가장 좋을 듯합니다."
"말씀 듣고 보니, 그 방법이 좋을 듯합니다."
두 번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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