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 200미터 밖은 안전"하니 법 바꾸자? 순서가 틀렸다

최근 언론 보도만 보고 있으면 소형모듈원전(SMR)은 이미 개발을 마치고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 기술처럼 보인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기술 임직원들이 서울 마포의 도심 지하 열병합발전소를 둘러보며 도심 속 SMR 발전소의 미래를 논했다. 또한 한국지역난방공사는 핀란드 기업과 도심 지하에 난방용 SMR을 짓는 협력에 나섰다.
수도권 곳곳의 노후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발전소를 단계적으로 SMR로 전환하자는 구상도 거론된다. 이 속도라면 머지않아 'OO SMR 아파트' 같은 브랜드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그러나 이 그림이 성립하려면 그 전에 반드시 지워야 하는 것이 있다. 법률에 적혀 있는 숫자다.
비상계획구역 축소 논란
지난해 9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사업단장은 기자간담회에서 i-SMR이 지하 매립형 구조여서 200미터 밖에는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다. 이런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서 말한 법령이란 방사선비상계획구역, 곧 원자력시설에서 사고가 났을 때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 설정해 두는 구역에 관한 규정이다.
현행법은 원자로로부터 반지름 3~5킬로미터를 예방적보호조치구역으로, 20~30킬로미터를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으로 설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200미터와 30킬로미터. 이 간극이 지금 한국 SMR 논의의 진짜 쟁점이다. 원자로를 어디에 지을 것인가 보다, 사고가 났을 때 누가 대피 대상이 되는가를 먼저 다시 쓰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상계획구역은 사고가 반드시 일어난다고 보는 구역이 아니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정리한 심층방어 개념에서 비상대비는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층이다. 앞의 네 층, 즉 설계 여유도와 안전계통·사고관리가 모두 무너졌을 때를 위해 남겨두는 층이다. 그래서 구역의 크기는 사고 확률이 아니라 사고가 났을 때의 결과를 기준으로 정해져 왔다. 원전에 비상디젤발전기를 한 대 더 놓았다고 대피구역을 줄여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법이 구역의 하한과 상한을 법률에 못 박아 둔 것도 같은 취지다. 법제처는 2015년 유권해석에서 원자력사업자가 법정 기초지역 범위의 상한을 넘거나 하한에 미달해 구역을 설정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그렇게 허용하면 구역을 무분별하게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 있게 되어 제도의 취지 자체가 훼손된다고 못 박았다. SMR을 이유로 비상계획구역을 줄이는 일은 고시나 시행령을 손보는 수준의 일이 아니라 국회가 법률로 결정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지금 규제기관과 사업자가 마주 앉은 라운드테이블의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미국이 실제로 한 일
축소론의 근거로는 늘 미국이 호출된다. 최고 수준의 규제기관이 과학적 검토 끝에 구역을 부지 경계까지 줄일 수 있게 했으니 우리도 30킬로미터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2023년 12월 시행한 새 규정이 실재하는 것은 맞다. 사업자는 방출 이후 96시간 동안 부지 밖 일반인의 예상 선량이 10밀리시버트를 넘는 구역만을 비상계획구역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을 인용하는 쪽이 함께 전하지 않는 사실이 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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