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쏘는 맛이 일품, 불 없이 만드는 초간단 당근 반찬

무엇을 심어 볼까. 그게 뭐든 무해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눈을 감았다 뜨면, 무언가 자라기 시작하고, 나는 기르는 사람이 된다.
- 시인 안희연의 <당근밭 걷기> 중
"어! 이게 뭐지?"
"그거 당근이지."
"당근이라고?"
지난 봄 남편이 텃밭에 심은 씨앗에서 이파리들이 나올 때까지도 나는 그게 뭔지 몰랐다. 학교 다닐 때 당근이 뿌리 식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배웠을 텐데 말이다. 주황색 열매는 보이지 않고 잎사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쑥쑥 자라는 게 그저 신기했다. 그전까지 내게 당근이란 그저 기다란 원뿔 모양의 주황색 채소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속 날쌘 토끼는 뾰족한 푸른 잎사귀가 달린 주황색 채소를 먹었다. 그 토끼는 늘 당근을 베어 먹으면서 자기를 뒤쫓아오는 동물들을 놀려 먹곤 했다. 하지만 한 번도 그게 진짜 당근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만화 속 세계는 신기하다고만 여겼다.
당근을 만나다
그런 내가 텃밭 농사를 하면서 진짜 당근을 봤다. 어릴 적 화면에서만 보던 바로 그 삐죽한 잎사귀가 내 눈앞에 있었다. 땅 위로 삐죽빼죽 올라오던 잎사귀는 날이 갈수록 무성해지고 줄기는 위쪽으로 쑥쑥 자랐다. 잎사귀만 보고는 도무지 당근이 어떻게 자라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한 달쯤 지나고 다닥다닥 붙어 있던 당근을 솎아 냈다. 땅속에 가느다란 원뿔 모양의 옅은 주황색 열매가 자라있었다. 그 뒤로 한두 주일 더 지나니까 흙 위로 둥그스름한 주황색 뿌리가 보였다. 텃밭 안내 책자에는 뿌리가 보이면 흙을 잘 덮어주라고 했다. 그렇게 북돋아 주어야 당근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걸 막아준다는 거다. '초록색 당근이라니!' 놀란 나는 주황빛이 조금이라도 보일까 봐 매번 열심히 흙을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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